사상 최대로 예상되는 촛불집회를 앞두고 집권당 원내사령탑이 '조기 탄핵'을 외치는 국민 다수의 요구를 거스른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우리 당은 (탄핵안의) 12월 2일 혹은 9일 처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탄핵안 가결 이후의 로드맵이 부실하다는 이유를 드는 한편, 탄핵과 개헌 작업을 병행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우선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최순실 국정조사에 집중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하지만 탄핵안 처리를 다음달 9일 이후로 미루면 정기국회 회기 종료로 임시국회를 열어야 하는데 새누리당 주류 친박계가 과연 협조해줄지 불투명하다.
또 국정조사까지 마친 뒤 탄핵 작업을 시작하면 탄핵소추의결서의 내용은 좀 더 보강되겠지만 지금도 위험 수위에 달한 국정 마비 사태는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 원내대표의 이날 발언은 탄핵안 처리를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으려는 속내를 담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그는 "탄핵 표결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물론 당내에서조차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탄핵을 바라는 국민들의 촛불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라고 했고 황영철 의원 등 당내 비주류 의원들도 "탄핵을 회피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정치권에선 정 원내대표가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고 자칫 '탄핵 반대세력'이란 오해만 살 수 있는 발언을 한 배경도 의아스럽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야당과 여당 비주류간의 '탄핵 연대'가 탄력을 받자 이에 제동을 걸기 위한 친박계와의 교감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 표결은 국회법 규정에 따라 교섭단체 대표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재적의원 과반수가 발의하면 무조건 본회의에서 처리돼야 한다. 정 원내대표의 주장은 친박 입장에서도 '립서비스' 이상의 효용은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 원내대표가 밝힌 것처럼 조기 탄핵 등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충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해석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최근 새누리당을 탈당한 김용태 의원은 "(정 원내대표가) 예산안 처리부터 하자고 했는데 그렇다면 법정시한인 12월 2일까지 마치고 탄핵 표결은 9일 하면 해결될 일"이라면서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정국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선 정 원내대표가 '걱정'하는 헌법재판소법 51조(심판 절차 정지 규정) 등의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지나친 우려라는 반응이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이번 발언의 속뜻은 결국 탄핵보다는 개헌에 있으며, 같은 충청권 출신이자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려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남게 된다.
조기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내년 1월에나 귀국할 반 총장에게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실제로 이런 셈법이 깔려있다면 탄핵 촛불을 치켜든 성난 민심 앞에서 위험천만한 정치 곡예를 하는 셈이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최순실 국정감사' 때도 증인 채택을 거부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의 폭발력을 키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