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순실 인사개입 의혹' 예술의전당…'이사회'도 파행

L 사외이사 "있으나 마나 한 예술의전당 이사회"

(사진=예술의전당 페이스북 캡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사장 인선에 개입한 의혹이 일고 있는 '예술의전당' 이사회가 파행 운영되면서 내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CBS 노컷뉴스가 25일 입수한 예술의전당 L 사외이사의 '편지'를 통해 밝혀졌다.

◇ "있으나 마나한 예술의전당 이사회"

지난 2013년 9월에 선임된 L 이사는 지난 2월 12일 임기를 7개월이나 앞두고 동료 이사와 감사 등에게 작별을 알리는 '인사 편지'를 띄웠다.

자신의 임기가 만료되는 9월 전에는 이사회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4년과 2015년에 이사회가 열린 횟수는 각각 3회와 2회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2월 결산 이사회 개최 이후 다음 이사회 개최까지 10개월이나 걸렸다.
올해도 예술의전당 이사회는 지난 2월 이후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다.

L 이사는 편지에서 "이사회가 너무 오랜만에 열려 예술의전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사회를 자주 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열 달 만에 열린다는 것은 이사회가 있으나 마나 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허수아비'로 전락한 이사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비판을 이어갔다.

L 이사는 "집행부 입장에서는 이사회가 자주 안 열려야 좋지요"라면서 "이사회가 이사장이나 사장을 선출할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니 이사회에 그다지 신경 쓸 여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산하 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예술의전당처럼 사장, 이사장 선출권을 이사회가 행사하지 못하는 곳은 많지 않은 줄 안다"고 덧붙였다.

◇ "사외이사로서 아무런 의미나 보람 없었다"

예술의전당은 220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과 25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포함해 극장 6개, 미술관, 서예관까지 아우르는 우리나라 최고의 복합공연장이다.

예술의전당은 연간 7백여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사장은 별도의 공모절차 없이 문체부 장관이 임명토록 돼 있다.

그는 예술의전당 이사로 활동하면서 겪은 무력감도 편지에 담았다.

L 이사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처음 이사로 위촉이 되었을 때 기쁜 마음이었지만, 2년반 가량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이사로서 아무런 의미나 보람을 느낄만한 것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또 "짜여진 예산과 결산, 그리고 규칙개정안을 추인한 것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오전 11시 반에 이사회를 열어 한 시간 남짓 회의한 후 서둘러 폐회하고 호텔에서 시켜온 점심 먹고 헤어지는, 지금과 같은 별 생산성 없는 형식적인 이사회를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지는 자체적으로도, 정부 차원에서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인 예술의전당의 발전과 이사회에 개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금 불편하실지 모를 이야기를 적었다"면서 편지를 맺었다.

◇ 현 고학찬 사장, 朴 대통령 '싱크탱크' 자문위원 출신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사진=예술의전당 홈페이지)
L 이사는 임기 대부분을 고학찬 현 사장과 함께 보냈다.


하지만, 고학찬 사장 임명이 발표되기 전날, 최순실씨가 사전에 후보자 인선자료를 받아본 것으로 최근 밝혀지면서 '사장 인선 개입 의혹'이 일고 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확보한 최순실씨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공소장 별지를 보면 최씨는 지난 2013년 3월 13일 '예술의전당 사장 인선안'을 받아봤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씨가 이 문건을 받아본 다음 날인 3월 14일 고학찬 당시 윤당아트홀 관장을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고 사장은 방송 PD 출신으로 주로 방송 쪽의 일을 해왔다. 또 윤당아트홀은 서울 강남의 소극장이라는 점에서 고 사장의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국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운영 능력'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고 사장은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의 문화예술분야 간사로 활동했다.

또 지난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낙하산 논란도 일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편지 전문
안녕하십니까?

설은 잘 쇠셨습니까?

예술의 전당 결산이사회를 22일에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날은 아쉽게도 제가 참석할 수 없는 날입니다. 그간의 관행으로 보아서 저의 임기안에는 다시 만나 뵐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이처럼 인사편지를 띄웁니다.

이사님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술의 전당 이사로 취임한 것이 2013년 9월이니 오는 9월이면 임기가 만료 될 것입니다. 그간 이사회가 재작년에는 세 번, 작년에는 두 번 열렸지요. 2월 결산 이사회 후 그 다음 이사회가 재작년에는 7개월 만에, 작년에는 10개월 만에 열렸습니다.

이러한 전례로 볼 때 올해도 9월 전에 이사회가 열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사회를 자주 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열 달 만에 열린다는 것은 이사회가 있으나 마나 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작년에 일곱달 만에 열렸을 때도 “이사회가 너무 오랜만에 열려 예술의 전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를 제가 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난해는 오히려 한 술 더 떴습니다.

집행부 입장에서는 이사회가 자주 안 열려야 좋지요. 또 이사회가 이사장이나 사장을 선출할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니 이사회에 그다지 신경 쓸 여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부 산하 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예술의 전당처럼 사장, 이사장 선출권을 이사회가 행사하지 못하는 곳은 많지 않은 줄 압니다.

저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처음 이사로 위촉이 되었을 때 기쁜 마음이었습니다만, 2년 반 가량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이사로서 아무런 의미나 보람을 느낄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짜여진 예산과 결산, 그리고 규칙개정안을 추인한 것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군요.

오전 11시반에 이사회를 열어 한시간 남짓 회의한 후 서둘러 폐회하고 호텔에서 시켜온 점심 먹고 헤어지는, 지금과 같은 별 생산성 없는 형식적인 이사회를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지는 자체적으로도, 정부 차원에서도 재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사님들의 면면을 보면 국가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분들을 형식적인 이사회를 위한 이사로 위촉하여 시간을 빼앗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인 예술의 전당의 발전과 이사회에 개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금 불편하실지 모를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이사님의 가정과 하시는 일에 축복이 함께하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6.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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