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앞 촛불집회… "언론 잘했다면 나라 이 꼴 났을까"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 '박근혜 끄고 공정방송 켜자' 문화제 개최

24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박근혜 끄고 공정방송 켜자'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24일 오후 7시,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100여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모였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하고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가 주관한 '박근혜-언론 게이트 진상규명과 언론 부역자 청산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이들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공영방송 KBS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영 좋지 못한 편이다. 지나친 북풍 몰이 보도, 청와대 및 정부여당 편향 보도 등으로 불신이 높아졌고, 대통령 비선실세의 헌정유린 사태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수십 수백만의 시민들이 모인 대규모 집회에서 취재진이 수모를 겪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KBS의 '공정방송'을 바라는 시민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 "진실을 위해 조금만 더 힘내 싸워 주십시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백희림 씨는 우리가 흔히 아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꺼내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백 씨는 "보통 '양치기 소년' 교훈을 정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들은 수업에서는 좀 달랐다. 소년이 처음 거짓말했을 때 사람들은 거짓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3번 반복됐고, 결국 그 공동체는 와해됐다. 책임과 잘못이 공동체 모두에게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반값등록금 하겠다고 하면서 안 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겠다고 하면서 차갑게 외면한 것, 교과서 90%가 편향됐다고 하면서 국정교과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왜 거짓말하느냐' 하면서 먼저 끌어내렸어야 했다. 국가 시스템을 대통령에게 맡겨 놨던 것에 대해 언론도 우리도 책임이 있다"며 "공영방송이 국민의 것이었다면 세월호 7시간이 지금까지도 비밀일 수 있었을까. 7시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건, 2년째 국민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 씨는 "어떤 정치인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던데, 우리는 촛불만 밝히는 게 아니라 움직이고 목소리 내는 것으로 우리나라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바람 그 자체다. 우리가 만들어낸 그 바람은 촛불을 끄는 게 아니라 박근혜를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맺었다.

군포시 흥진고등학교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학생은 공영방송 KBS를 '친구'로 비유했다. 그는 "드라마, 예능, 뉴스를 보며 TV는 제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하지만 그 친구에겐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점점 변해갔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심지어 친구였던 우리에게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젠 배신자란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KBS·MBC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니 대표했던 언론이자 세상을 공정하고 진실된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공영방송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그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인가. 최순실 씨인가"라며 "국민이 원치 않는 언론, 비난하는 언론을 방송이라 칭할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국민의 뜻을 수렴하십시오. 언론은 진실된 뉴스만 전해 주십시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실을 위해 조금만 더 힘내 싸워 주십시오. 언론은 누구의 통제도 간섭도 없이 국민의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언론이 제 역할했다면 나라가 이 꼴 됐을까"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김수환 활동가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일삼아 온 KBS이사회 조우석 이사(여권 추천)의 사퇴를 촉구했다. 김 활동가는 "조우석은 극우세력 토론회에 참여해 성소수자들을 향해 더러운 좌파라고 하고, 더러운 걸 더럽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했으며, 동성애자들의 최종 목표는 국가 전복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혐오, 에이즈 혐오, 빨갱이 혐오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전형적인 매카시즘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방송법을 보면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KBS는 모든 방송 중 공적가치를 수호해야 할 책임이 가장 큰 공영방송이고, 제 역할을 잘하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자리가 KBS 이사직이다. 그런데 본인이 앞장서서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는 조우석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퇴진 영등포 시민행동의 정재민 씨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사상 초유의 헌정유린 국정농단 국정마비 사태를 보면서,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면 나라가 이 꼴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박근혜 정권은 무너지고 있다. 박근혜를 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언론 부역자들도 끌어내리자. 여러분들을 응원한다"고 언론인들을 격려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재호 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성재호 본부장은 "앞서 진행된 민주언론상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의 도화선이 된 한겨레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상 받는 것을 봤다"며 "수백명의 기자가 있고 1조 넘는 매출이 있고 수신료를 6000억 받는 KBS는 뭐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KBS 보도 간부들은 '최순실이 측근 맞냐, 증명해봐라' 이러면서 보도 통제하고 은폐하고 늑장·부실 보도했다. 이런 게 가능했던 것은 한 가지다. 바로 KBS 내에 수많은 부역자들이 있고, 박 대통령이 지명하는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라며 "부역자를 공영방송 안에 있지 못하게 하는 방송법 개정안(언론장악 방지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시점이고, 그게 마지막 남은 임무라고 본다.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한편,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열리는 26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 문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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