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심위)는 방송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다. 방심위의 주요 업무는 방송·통신·광고의 심의인데, 이 결과에 따라 방송사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경징계 '행정지도'가 아닌, 중징계 '법정제재'가 나올 경우 방송사 재허가 시 감점을 받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 역시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방송과 통신의 융합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며, 방송과 통신의 균형발전과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출범한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다. 방통위는 방심위가 내린 심의 수위를 확정해 방송사에 제재 조치(대부분 중징계)를 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KBS '추적60분-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박창신 신부 인터뷰' 등이 방통위에서 중징계가 확정돼 '정치 심의' 논란이 일었으나, 법원은 이후 방통위의 제재 조치가 적법하지 않았다며 방송사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방심위와 방통위가 청와대의 '언론통제'에서 한 축을 맡아 활용된 것 아니냐는 정황이 속속 나오는 데 있다.
지난 17일, 언론노조는 김영한 비망록 속 KBS 관련 메모(2014. 6. ~ 2014. 10.)를 공개, 청와대가 △길환영 전 사장 해임 후 사장 선임 일정을 지속적으로 체크했고 △KBS 이사장 선정 과정에 개입했으며 △새노조에 대한 감시를 한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KBS이사회 이길영 이사장(여권 추천)이 조대현 사장 취임 2달도 안 돼 갑자기 사퇴한 배경에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의 종용이 있었고, 바로 이틀 뒤 '뉴라이트 성향'의 이인호 씨가 '기다렸다는 듯' 새 이사로 추천됐다는 폭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참고로 방통위는 KBS이사회 이사를 추천할 수는 있지만, 직의 면탈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 KBS 새노조, 최성준 방통위원장 사퇴 촉구
KBS 내부 구성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는 24일 성명을 내어 최성준 방통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새노조는 우선 최성준 위원장이 최근 제기된 이길영 전 KBS 이사장 사퇴 종용 의혹에 대해 ‘(KBS 사장 선출 이후) 이길영 전 이사장과 사퇴에 대한 공감대를 서로 형성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새노조는 "김영한 비망록에도 조대현 씨가 KBS 사장으로 선출된 지 이틀 후(2014. 7. 11.), 'KBS 이사'라는 단어와 함께 '면종복배'(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칼을 숨기고 있다는 뜻)라는 섬뜩한 단어가 적혀 있다. 이는 청와대가 앞서 언급한 '반란표'를 던진 이사들을 향한 말임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새노조는 최성준 위원장에게 △KBS 이사장 사퇴에 대한 공감대에 대해 △청와대 누구와 교감을 갖고 KBS 이사장을 현 이인호 이사장으로 교체했는지 △이사장 교체와 뒤이은 새 이사진 구성, 고대영 사장 선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박근혜의 청와대와 어떤 작당을 했는지 낱낱이 자백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 언론연대 "청와대-방심위 언론통제 커넥션, 진상 밝혀야"
언론시민단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대표 전규찬, 이하 언론연대) 역시 지난 16일 성명을 내어 "청와대가 방심위에 어떤 지시를 내렸으며, 방심위는 이를 어떻게 수행해 왔는지 전모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김영한 비망록 내 "언론환경(의) 악화에 따라 문제 보도(가) 범람" 및 "시스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방심위) 활용방안을 마련하라"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에 대해 "이는 청와대가 방심위를 직접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비망록 작성이 시작된 2014년 6월, 청와대는 박근혜 경선캠프-대선캠프-인수위를 두루 거친 최측근 인사 박효종 씨를 방심위에 임명했다"는 점을 짚었다.
언론연대는 또한 윤석민 전 방심위원이 갑작스럽게 사퇴한 자리를 보다 더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조영기 고려대 교수가 채운 점,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인터넷 글을 삭제할 수 있게 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이 추진된 점 역시 청와대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KBS의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망언' 특종 보도 심의 당시, 윤 위원은 '언론학계 의견 청취'를 주장하고 최고 수위 제재인 '관계자에 대한 징계'(벌점 5점) 다른 여당 추천 위원들과 달리 다소 낮은 '주의'(벌점 1점)을 내놓았다. 결국 해당 보도는 행정지도 '권고'를 받았는데, 이 때문에 윤 위원이 '청와대에 미운털이 박혔'고, 임기 시작 6개월 만에 돌연 사퇴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윤 위원 후임은 방문진 고영주·김광동 이사와 함께 '친북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고, 통진당 해산 국민운동본부 등에서 활동한 극우 성향의 조영기 고려대 교수가 맡았다.
2014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발언한 이후, 청와대는 ‘산케이신문 지국장 명예훼손 기소’(2014년 10월), ‘세계일보 정윤회 비선실세 보도 명예훼손 고소’(2014년 11월), ‘세월호 7시간 발언에 대한 박래군 인권활동가 명예훼손 기소’(2015년 8월) 등 줄소송을 벌였다.
2015년 7월, 방심위는 갑작스레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은 '인터넷 명예훼손 글을 피해 당사자의 신청 없이 제3자의 신청이나 자체 인지만으로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마디로, 인터넷에 쓰여진 글 중 대통령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한 제3자가 신고를 해도 삭제가 가능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불과 1년 반 전에 '친고죄' 형식으로 개정된 내용을 뜬금없이 고치려는 움직임에, '청와대 지시 의혹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언론연대는 "2008년 MB 정권 출범과 함께 설립된 방심위는 '민간독립기구'라는 대외용 포장과 달리 정권의 언론통제기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베일 속에 감춰졌던 숱한 의혹의 실체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박근혜-언론 게이트'의 청산을 위해서는 '청와대-방심위 커넥션'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국회는 즉각 ‘박근혜-언론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