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맺음말 중에서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과학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방광암과 심장병으로 두 차례의 대수술과 죽음의 고비를 넘긴일흔다섯이 되는 시점에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답을 정리한 것이다.
과학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 NHK 프로그램 <임사체험 인간은 죽을 때 무엇을 보는가〉(1991)와 <임사체험 죽을 때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2014) 제작을 위해 20여 년이라는 시간의 터울을 두고 세계를 돌며 임사체험자, 뇌신경외과 전문의, 뇌과학자, 정신의학자 들을 만나 죽음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그가 만나온 이른바 관념주의와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후세계, 임사체험, 마음과 죽음의 관계, 백주몽을 꾸는 듯한 신비체험 등에 대해 들려준다. 또한 이들과는 반대의 관점에 선 뇌과학자와 뇌의학자 들이 죽음과 죽는 순간과 꿈을 꾸는 순간 뇌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학제적 접근 방법으로 관찰·탐구하고 해석하는 현대 뇌과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그리고 장기 요양 병원의 환자, 암 환자를 대해야 하는 의료진의 기준과 마음 준비, 죽음의 선고를 받은 암 환자와 환자 가족의 심리, 투병생활의 고통, 암의 재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같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직접 겪게 될 간호대생들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의 고충을 위로하고 따뜻한 조언을 한다. 다치바나는 이러한 죽음의 문제와 더불어 자살, 존엄사, 안락사, 연명치료, 장례문화 같은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말한다.
책 속으로
비이성적이고 해괴한 것에 빠져들어야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세계에 입성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 본문 31쪽
임사체험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건 너무도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며 '초월적 존재'와 만나는 신비체험입니다. 방송 말미에서는 켄터키대학의 케빈 넬슨(Kevin Nelson) 교수가 진행한 연구를 단서로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인간은 왜 신비체험을 하는지와 같은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어요. 인간은 죽음의 순간 정서, 의욕, 기억에 관여하는 대뇌변연계의 작용에 따라 백주몽을 꾸는 것 같은 상태가 되면서 충만한 행복감에 빠져들게 되는데, 바로 이때 신비체험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비체험은 뇌 속 기관 중 진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부분인 변연계와 관련 있다는 가설을 근거로 넬슨 교수는 신비체험이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현상일 가능성을 언급했어요. 인간은 어쩌면 태곳적부터 죽는 찰나에 신비체험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 본문 40쪽
어린 시절 생각한 이상적인 죽음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읽은 책에 나온 코끼리의 죽음이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끼리는 죽음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밀림 속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은 아무도 모르는 코끼리들의 무덤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덤에 도착하면 산처럼 쌓여 있는 뼈와 상아 위에 저 홀로 고요히 몸을 누인다고. 나도 죽을 때는 코끼리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혼자서 고요히 죽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사회에서 이렇게 죽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백부처럼만이라도 죽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성싶다. - 본문 67쪽
결국 의료라는 것은 마지막에는 환자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호할 때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환자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면, 그 환자가 사망했을 때 심리적 타격이 너무 큽니다.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조절해야만 하는 게 간호사라는 직업의 매우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문 99쪽
일본존엄사협회는 현재 존엄사를 희망하는 인구가 12만 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과거 의사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따라 진료를 했지만, 지금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만을 고집할 경우 앞서 든 예처럼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저 목숨만 부지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늘어날 뿐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여기서 이익이 남는 사람들,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을 지속해야 하는지 숙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어떤 관점을 취할지 정해두는 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 본문 120쪽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 전화윤 옮김 | 청어람미디어 | 176쪽 | 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