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신앙 안에서의 믿음과 세속적 비신앙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갈등’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쓰였다. 과학과 종교, 지성과 영성은 애초에 대립하지 않으며, 맥락을 확장시키면 저절로 해소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거짓 정보와 기만전술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앎을 추구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살아가면서 의식적, 영적으로 최대한 성장할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인간 존재의 가장 큰 혜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카르마적 운명, 곧 지금의 조건들이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듯이 우리의 의식 수준을 진보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을 영적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여길 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에서 한걸음 떨어져 소박한 일상에서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법을 익혀 이해의 폭을 확장하면, 수 세기 동안 인류를 난관에 빠뜨리고 좌절하게 만들었던 한계들을 뛰어넘어 삶의 자율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의 첨예한 정치적·과학적·종교적 쟁점들을 인간의 의식 수준과 마찬가지로 1부터 1000까지 수치화하여 전체적인 담론 및 문화 지형도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책 속으로
지금 보면 말도 안 되지만 과거에는 지구가 둥글다, 편평하다, 또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 등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있었다. 이와 똑같은 유형의 사이비 딜레마가 지금도 과학/이성 대 종교/영적 진실과 믿음에서 반복된다. 하지만 맥락을 확장하면, 갈등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갈등은 자의적이고 제한된 시각과 관찰로 생긴 정신 작용의 인위적 결과(인공 산물)에 불과하다는 점도 밝혀질 것이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한계는 곧 에고의 핵심인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면서 생겨난다. 에고는 그 자체의 승리를 위해 진실과 통합성을 희생시킨다.(과학은 의식 수준 400에 한정되어 있다. 반면 비선형적 맥락이나 영적 실재는 500, 혹은 그 이상으로 측정된다.) 그렇게 비전이 제한되면 인간의 평화와 진보는 손상되고, 그뿐 아니라 지혜와 행복에도 걸림돌이 된다. (41~43쪽)
'존재' 자체는 선별된 해석이다. 실제로 우주와 신성은 통합된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은 우주의 '원인'이 아니라 근원이자 영원히 존재하는 기층이다. 그러므로 진화적 창조는 전능함이라는 무한한 잠재성이 존재의 현실성으로 전개되는 결과다,(247쪽)
유머는 자유와 즐거움의 표현이며 웃음은 생물학적으로 치유의 효과가 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죄책감과 '깊은 참회'를 근간으로 하는 속죄와 고행을 강조했지만, 그런 태도가 의식 척도에서 매우 낮게 측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은 그 척도의 맨 아래가 아니라 가장 꼭대기에 존재한다. 믿음, 사랑, 기쁨은 확실하고 순탄한 길이다. 반면 파멸과 우울은 그저 슬픔과 낙담으로 이어질 뿐이다. (339쪽)
그래서 평범해지기 위한 노력을 택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그저 평범하다는 것은 다름 아닌 신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짜 자아의 진실은 일상의 경로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서로 보살피고 친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기에 필요한 전부다. 나머지는 때가 되면 서서히 자신을 드러낸다. 일상과 신은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459쪽)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472쪽 | 1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