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맛] 다 퍼줘라. 밑지는 장사 없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생태전문점 '안성또순이' - 최점례 사장

외식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사장님들이 들려주는 '장사의 철학', 그들의 이야기가 "장사나 해 볼까?" 생각하는 창업 꿈나무들과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700만 자영업자들에게 장사의 대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내 소울 푸드 중 하나는 동태찌개다. '탕'은 어쩐지 고급스러운 느낌이라 평소 부르던 대로 '동태찌개'라고 하겠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 집 밥상에는 어김없이 동태찌개가 올라왔다.

듬성듬성 썰어 넣은 무가 얼마나 많은지, 이건 뭐 동태찌개인지 무찌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릴 땐 누구나 그렇듯이 국물에 빠진 생선보다 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구워낸 생선을 더 좋아해 밥상에 동태찌개가 올라오는 날이면 "우리도 갈치구이 좀 해 먹자고요!" 하며 투정하기 일쑤였다.

갈치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에게 엄마는 '갈치 장사한테 시집 보내겠다'라고 으름장을 놨는데 어린 마음에 '갈치장사한테 시집하면 맛있는 갈치구이를 매일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당시 내 마음속 신랑의 직업은 갈치장사였다.

그런데 스무 살 이후 객지생활을 하면서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찬바람이 불었다하면 동태찌개가 떠오르는 것이다. 동태찌개를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서울은 동태탕보다는 생태탕이 더 대중화 되어 있었다.

음식에도 계급이 있다면 동태탕보다는 생태탕이 윗분이신데 그 이유야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날생선과 언생선을 비교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동태탕이 더 좋다. 살이 더 탱글하고 국물 맛 또한 생태탕 못지않게 시원하고 얼큰하다. 내 혀가 모질라서 그런 것일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중년 이상 남성들이라면 '안성또순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생태전문점이자 생태탕의 대명사가 된 집이다.

그런데 안성이 바닷가도 아니고 생태찌개로 유명한 것도 아닌데 왜 '안성 또순이'일까?

창업자 최점례 사장의 남편이 안성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 군에 입대 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자식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것이고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손자들에게도 뿌리가 안성이라는 사실을 심어주고자 안성을 붙였다고 한다.

◇ 뭐라도 해볼 심정으로 시작했더니

우리들의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식당을 하신다면 역사가 거의 비슷하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 데리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다. 그나마 식당이라도 한 사람은 손맛이 좋고 나름 화통한 성격에 진취적인 사람들이다.

부부가 함께 식당을 했다면 대부분 바깥양반은 한량인 경우가 많고 안주인이 장사하고 살림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식 그 음식의 대명사가 된 식당들을 인터뷰해 온 결과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안성 또순이'의 시작 역시 최점례 사장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였다. 어린 자식 셋과 덩그러니 세상에 남게 된 그는 안성에서 생태를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팔았다. 하루 종일 무거운 대야를 머리에 이고 다녔으니 목뼈가 얼마나 부러지게 아팠을까.

하지만 그 시절 홀어머니들이 그랬듯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생업전선에 뛰어 들어 아플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여자 혼자 몸으로는 자식을 먹여 살린다는 게 그만큼 힘든 시절이었으니까. 아무리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도 그날이 그날이었다.

그런 최점례 사장에게 서울에 사는 친척이 차라리 서울로 오라고 권했다. 뭘 하든 그 정도 노력이면 서울에선 먹고는 산다는 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상경해 처음 한 것이 국수장사였다. 을지로 인쇄소 골목에 살던 지인이 집 추녀 밑을 내줄테니 뭐라고 해 보라고 해서 시작했던 것. 추녀 밑을 주방 삼아 길거리에 탁자 두 개 두고 비빔국수를 팔았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으니 아침이면 그날 쓸 물을 퍼 나르는 게 일과였다.

"혼자서 그걸 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팔이 빠졌는데 그때는 병원 갈 엄두도 안 나서 부러진 팔을 동여맨 채 한 손으로 물을 길러오고 김치 담고 국수 삶고 다 했어."

비록 노점이었지만 섣부르게 장사하지는 않았다. 국수 하나도 어떻게 하면 맛있을까 고심하다가 날콩가루를 넣어서 국수공장에 주문하기도 했고 곁들임 찬으로 하루나김치- 담아서 하루 만에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을 매일 담갔다.

"하루나김치를 담가서 하룻밤 얼음이랑 같이 해놓으면 다음날 맛이 기가 막혀요. 냉장고에 넣어갖곤 그 맛이 안 나요."

하루나김치를 곁들인 비빔국수를 먹으려고 한여름 땡볕 아래서도 양복을 빼입은 손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줄을 섰다.

그 시절 최점례 사장은 욕쟁이로 통했다. 누구든 주는 대로 조용히 먹고 가야 했다. 사리 더 달라 또는 김치 더 달라고 주문했다가는 국수는 고사하고 주인장에게 욕이나 한 바가지 먹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국수를 더 먹고 싶은 자. 줄을 서시오!

"젊었으니까. 안 그러면 남자들이 수작을 거니까."

음식은 인격이다. 어느 것 하나, 속된 말로 콩나물 대가리 하나를 내놔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그 음식이 부끄럽지 않다. 이런 음식을 담아낸다면 손님들의 혀와 마음을 매료시킬 수밖에 없다.

제대로 가게를 얻어 장사한 것은 1970년 중반,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아래 좁은 비탈 골목에서다. 제대로 된 가게라고 해도 테이블 4개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고기랑 유부를 넣은 우거지찌개를 했는데 제법 손님이 있었다.

"메뉴 하나 갖고는 안 될 거 같아서 길게 장사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게 생태였어."

그때는 명태가 흔할 때라 언제까지고 명태가 있을 줄 알았단다. 이렇게 귀한 몸이 되실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명태는 바다가 없어지고, 이 세상이 없어지지 않으면 계속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명태는 10년 넘게 사는 생선이다. 한 번에 알을 수도 없이 낳는다. 그 알에서 헤아릴 수 없는 새끼(노가리)들이 구물구물 나온다. 오죽하면 쓸데없는 말을 헤프게 많이 하는 사람을 '노가리 깐다'고 했겠나. 그 많던 명태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처음에는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맹물에 생태를 끓였다.

"맑은 물을 써야 칼칼하지. 싱싱한 생태랑 좋은 무를 써야 국물 맛이 제대로 나고…"

마늘도 듬뿍 넣어서 국물 맛이 얼큰하고 시원한 생태탕. 해장에 이만한 게 또 있을까. 고주망태가 되도록 달린 후, 그 국물 한두 숟가락이면 흐릿하던 시야가 환해지고 위장이 편안해진다. 더 말 안 해도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맛이다.

그래서 생태탕을 시작한 후로는 점심시간이나 퇴근 무렵이면 자리 쟁탈전이 치열했던 것. 심지어 부뚜막에 앉아 식사하는 손님이 있을 정도였단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그러나 개발 바람에 밀려 식당은 논현동으로, 청진동으로 떠돌다가 2007년부터 지금의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옆 골목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사이 사장은 할머니가 되었고 이젠 중년의 맏딸 전선영씨가 식당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딸은 절 음식 마냥 감료를 못하게 해. 그래서 내가 잔소리를 하면 '엄마는 구멍가게 한 거고, 지금은 대기업이야' 이런다니까."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식당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이젠 좀 쉬었으면 해서일 것이다. 딸은 여든을 바라보는 엄마가 일하는 걸 보면 맘이 편치 않을 테니까.

하지만 최점례 사장은 지금도 매일 식당에 나온다.

"내가 늙었어도 더 잘해요. 나는 손님들한테 팁도 받는걸."

단골손님들은 여전히 식당을 지키고 있는 그가 반가울 것이다. 그런 단골손님을 대접하는 게 그의 큰 기쁨이다.

"손님이 '맛있게 먹고 가요' 라고 할 때가 제일 좋아."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게 없는지 늘 살피고 생각하게 된다.


◇ 흥이 넘치고 정이 넘치는 진짜 또순이

최점례 사장은 내가 만난 식당 사장님가운데 가장 화통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녀시절 국극단(현재의 창극) 단원으로 10여 년 간 활동했다.

방송 내내 탁자를 탁탁 두드리면서 열정적으로 말하는 통에 잡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거슬려하는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집중했는지 방송 중 갑자기 "아이고 나 쫌 벗어야 되겠네. 더워서" 라며 반짝이가 내려앉은 화려한 분홍색 카디건을 벗어젖혔다. 투박하지만 꾸미지 않은 말투와 행동은 그의 인생과 장사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방송이 끝나고서 자진해 노래 한 자락 하겠다면 '여자의 일생'을 불렀다. 진행자 손숙 씨는 장단을 맞추며 어깨춤을 췄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홀로 자식 셋을 등에 업고 대찬 인생을 살아온 진짜 또순이에게 보내는 박수 갈채였다.

그에게 또순이란 기가 막힌 애칭을 붙여준 사람은 누구일까? 참고로 또순이란 똑똑하고 돈을 매우 아껴 쓰는 여자를 귀엽게 부르는 말이란다. 하지만 내 인식에는 '생활력 강한 여자', '악착같이 돈을 버는 억척녀'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또순이란 이름은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까막차 타고 오신 어떤 사장님이 지어주신 거야."

자신의 고급 까막차도 들어갈 수 없는 을지로 골목으로 고작 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청한 친구에게 그 사장님은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내사 마, 니한테 이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이기 뭐꼬? 서울까지 와 가 이런 델 델꾸 가나?"

"가서 일단 먹고 얘기해. 사장한테 조금이라도 빈틈 보이면 국수 안 줘. 조심해야 돼."

그렇게 찾아가 먹은 비빔국수는 그야말로 천하일미였던 모양이다. 까막차 사장님의 분노는 눈 녹듯 녹아 내렸다. 팔이 빠져서도 당차게 장사하고 사리 더 달라고 해도 욕하고 김치 좀 더 달라고 해도 욕 해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짜 또순이가 여기 있었네!"

'욕쟁이', '깡패'로 불리던 최점례 사장은 '또순이'란 이름이 썩 맘에 들었고 이후 식당 간판을 달게 됐을 때 '또순이'란 이름을 썼다.

◇ 나는 아직도 가난하다

'안성또순이'는 가게를 여러 번 이전한데다 꽤 외진 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도 광화문 일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웬만한 식도락가라면 다 안다. 그만큼 유명하니 돈 좀 벌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릉에 있는 빌라 32평이 전 재산이야."

의외의 대답이다.

"어릴 때부터 남한테 퍼 주는 걸 좋아해서 내 앞으로 해놓은 게 없어."

남 퍼주는 걸 좋아하는 것은 태생인 것 같다. 어릴 적 계모한테 얻어맞으면서도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고 한다.

"계모한테 맞을 때는 '다시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막상 밥 굶는 사람을 보면 집에 있는 감자 갖다 주고 보리쌀 퍼다 주고 그러다가 계모한테 들켜서 또 맞고 그랬어."

생태를 이고 다니면서 팔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도 없이 뭘 먹고 사냐고 애들 먹이라고 보리쌀이나 잡곡을 한 대씩 더 주기도 했는데 그럼 나는 생태 한 마리를 더 줘버려."

인심이 후하니 손님은 많았으나 퍼주길 좋아하니 앞으로 남아도 뒤로 밑지는 장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색한 장사꾼이 성공했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생태탕의 맛은 생태가 얼마나 싱싱하냐에 달려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동해에서 갓 잡아 올려 끓인 것이 으뜸이다. 싱싱한 생태가 생태탕의 생명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최점례 사장은 처음부터 30여 년간 한 집에서 생태를 받아왔다.

"우리 집에 최고로 싱싱하고 좋은 생태를 구해 주기 위해 잠도 안자고 뛰어다니는 사람이었어."

그 집도 대를 이어서 하고 있다.

문제는 요즘 동해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의 오호츠크 해와 베링 해, 일본의 홋카이도 부근에서 잡아온 것이다. 최점례 사장은 생태탕 전문점 오너답게 명태가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다.

"러시아산은 못 써요. 크기만 하고 맛이 없죠. 중국이랑 일본에서 잡은 건 괜찮아요. 같은 바다에서 잡은 것이니 국산이랑 한 형제죠."

국산 생태를 구할 수 없으니 생태탕 전문점이 위기일 수밖에 없다. 결국 맏딸 전선영 씨가 두 발 벗고 나섰다. 전국 바다를 돌아다녀본 결과 생태 자리를 대신 할 새로운 생선으로 대구를 낙점했다. 생태를 구할 수 없을 때는 대구탕이 대타로 나온다니 '안성또순이'는 더 이상 생태전문점이 아니다. 물론 생태탕 이상으로 대구탕 역시 여전히 맛있고 인기다.

그럼 이제 안심해도 좋은가? 대구란 녀석은 우리 바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기후변화는 밥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식당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 가에 대한 대안이 필요할 때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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