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어느 덧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가장 추운 겨울을 맞았다.
'최순실 사단'이라 불리는 비선 실세들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어 온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고, 스스로 지도자 박근혜 대통령을 버린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추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제 대한민국에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룬 제도적 민주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에 대한 반작용 때문일까.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단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상식적이고, 올바른 철학을 가진 지도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탓이다.
영화를 만든 전인환 감독에게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이 시국에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전 감독과의 일문일답.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부산북강서을에 출마했던 시절을 굳이 선택한 이유가 있나?
- 유튜브를 가도 볼 수 있는 자료가 아닌 다른 자료를 찾고 싶었다. 물론 그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낙선한다. 그렇지만 그 패배한 선거로 인해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고,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역사적인 지점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극적인 승리를 이룬 자료들도 몇 개 있다. 저는 그게 별로 당기지 않더라.
▶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그 실패 속에서 많은 것을 얻은 셈이다. 절묘하게 지금의 시국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고, 우리 국민들 또한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당시 민주당 당적으로 부산에 출마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럼에도 2000년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의미있는 실패였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패배 기록이 역설적으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다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봤다.
▶ 그래서 그런지 상영관 확보 등 문제 때문에 흥행이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관객수가 10만 명을 돌파했다.
- 황당하고 허탈하고 허망한 시기다. 영화 속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이 위안을 받는 것 같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이야기들은 정말 상식적이다. 단지 세상이 워낙 비상식적이라서 그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 뿐이다. 지도자의 인간적인 모습에 목 말랐을 것 같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국민의 아래에서 일하는 머슴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데 지금 지도자는 국민의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행동했다. 자꾸 군림하려 하고, 탄압하려고 하고, 말을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 민주당 당적으로 부산에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상황으로서는 달걀로 바위치기처럼 되게 힘든 거다.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건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 공학적으로 정치를 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치를 했다. 정치인들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설사 따돌림을 당할지라도 국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확실했다고 본다.
▶ 사실 노무현 대통령을 별로 좋지 않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포괄적으로 이 영화를 보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 정치적인 것을 걷어내고, 보편적인 정서와 상식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국회 시사회 때 새누리당 의원들도 왔었다. 그 분들이 좋아하더라. 영화를 잘 봤다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 돌아가신 백무현 작가님이 총선에 도전한 이야기가 영화 안에 꼭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어떤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도전과 백무현 작가의 총선 도전을 교차시켰나?
- 백 후보님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세상을 떠나시는 날 마침 인터뷰를 하자고 전화를 드렸다. 오늘 못 넘기신다고 하더라. 혹시 몰라서 카메라를 가져갔고, 얼굴을 뵈었는데 그냥 막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찍을 수가 없었다. 그 분을 이런 모습으로 보내드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유세 기간에는 백 후보님이 암이라는 것을 본인도 몰랐다. 나와 김원명 작가 그리고 가족 중에서는 그 처남만 알고 있었다. 그걸 알리면 캠프 자체가 와해가 되는 상황이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 분의 죽음 자체가 의미없는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범했던 우리 중 한 사람이 어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몸으로 부딪친거다. 깨어난 시민의 조직된 힘, 그래서 백무현 후보도 또 다른 무현이라고 본다.
- 감독판 생각은 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갈 지가 문제지. 제 생각에는 부산 북강서을 유세 영상 중에서 좋은 영상을 더 넣고,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토크 부분을 더 넣으면 어떨까 싶다. 토크의 경우, 막 술김에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도 드는데 사실은 거의 7시간 분량이다. 굉장히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데 10분, 5분 단위로 잘려 나갔고, 이야기를 '노무현'에 맞추다 보니까 마치 '노무현이 좋다'는 느낌만 강조된 것 같다.
▶ 삼촌인 가수 전인권 씨가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OST를 불렀다. 노래로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것은 역시 가족의 힘인가?
- 설날 때 여쭤봤다. 기대는 많이 안 했다. '삼촌, 영화 하는데 노래 한 곡만 불러 주시면 안돼요?' 하니까 '무슨 영화냐'고 되묻더라. '노무현 대통령 영화'라고 답했다. 잠깐 숨을 깊게 들이 쉬고 침묵하더니 '너 그게 되게 어려울텐데 힘들지 않겠어'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좀 둔해서 힘든 것을 모르겠는데 삼촌이 힘들 것 같거나 부담되면 (안 불러도) 괜찮다고 했다. 나중에 전화가 와서 '네가 하면 노래 부를게' 하시더라. 그렇게 참여하게 됐다.
▶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는지 한 마디 부탁드린다.
- 일단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다. 단지 노무현이라는 지도자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철학을 많이 보셨으면 한다. 정당과 지역을 다 떠나서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해봤으면 한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중등 교사 관객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어느 날 학생들에게 '나라란 무엇이냐'에 대해 쓰는 숙제를 내줬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생이 '나라란 자식이다'라고 써왔다. 그 교사가 이유를 물어보니 학생이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돌보지 않고, 방치하면 비뚤어진다'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반성을 많이 했다. 이제 또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할 시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