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첫 주말을 맞이한 이날 시험을 마친 수험생이 학부모와 함께 가족 단위로 대거 거리로 나와 성난 부산의 민심을 표출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0만, 경찰 추산 1만5천여 명의 시민이 참석해 3만 명이 모인 지난 12일 집회 인파를 일찌감치 넘어섰다.
부산 시국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오후 7시 30분, 서면 쥬디스 태화 일대는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불가능할 정도로 집회 참가자들이 이미 도로를 가득 메웠다.
◇ 교복 입은 청소년들과 유모차 끌고 나온 시민들로 '북적북적'
본 집회에 앞서 오후 5시부터 성인 집회 한쪽에서 부산지역 청소년들이 따로 모여 최근의 정치적 상황을 두고 10대들의 눈높이에서, 그러나 어른 못지않은 성숙한 정견을 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부산 이사벨고등학교 2학년 박근형(18)군은 "우리가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나라는 최소한 우리가 낳은 아이가 왜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게 했냐고 원망하는 나라가 아닌 이 땅에 태어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땅의 미래 세대인 청소년으로서 부탁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십시오. 그 길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정 공백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다"고 밝혔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청소년 자유발언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측근 들을 향한 진지하면서도 엄중한 비판과 함께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발언들이 뒤섞여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지난 17일 수능을 치르고 생애 첫 집회에 참가했다는 수험생 이수빈(19·남구)양은 "참다 참다 수능 끝나고 바로 집회에 나왔다"며 "보통 학생들은 학교에서 무단 결석이라도 한 번 하면 내신에 크게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학교에 출석한 날이 별로 없는 정유라는 어떻게 이화여대에 입학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온 학부모의 모습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어 이씨는 "20여 년 전 대학 시절에 참가했던 집회는 전투적이었는데, 요즘 집회는 문화제 형식으로 바뀐 것 같아 가족 단위로 참여하기에 좋은 것 같다"며 "'하야하기 좋은날'이라는 재미난 문구로 집회에서 쓸 피켓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왔다"고 전했다.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로 열린 이날 집회는 평화집회 차원을 넘어 오히려 축제로 묘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 6시간 넘는 집회와 거리행진에 부산시민들 대다수 끝까지 동참
인파가 몰리면서 애초 쥬디스태화 옆 간선도로를 차지했던 시민들은 급기야 왕복 8차로 규모의 중앙로를 완전히 점거했다가 경찰이 가까스로 2개 차로를 확보해 차량 통행을 재개하기도 했다.
오후 8시 50분부터는 서면 집회 참가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시작하면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유모차 부대'가 눈에 띄었다.
강서구에서 3살과 7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서면 집회까지 나온 김민선(37·여)씨는 "쌀쌀한 날씨에다 인파들로 이리저리 치일 수밖에 없는 현장을 예상했지만,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체 집회 참가자의 80% 이상이 서면에서 연산 로터리까지 이어지는 거리행진에 동참하는 등 이날 오후 5시에 시작된 집회는 오후 11시를 넘어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