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익진' 따라 이어진 시민발언대…'2016 아고라'

19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제4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내자동 로터리로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고 막아서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행진이 경찰 차벽에 가로막힌 뒤 시민들은 자유발언대에 올라 재치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19일 밤 4차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광화문광장과 경복궁 앞 사직로와 율곡로 등에 방송차량 5대를 설치했다.

또한 노동당이나 환수복지당 등 정당이나 단체에서도 경복궁 현판 앞 등에 방송장비를 설치했다.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2016 민중 총궐기 대회'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행진에 나섰다 경찰에 차단된 시민들은 사직로·율곡로 등에서 청와대를 포위하는 '학익진'을 펼치고서 방송차량이나 장비를 이용해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오후 10시쯤 경복궁 사거리(동십자각 로터리)에 설치된 방송차량에는 자신을 경기도의 한 학교 역사교사라고 소개한 남성이 터틀넥 상의로 얼굴 한쪽을 가리고 올라섰다.

그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면 삶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고 가르치고 싶은데 지금은 참 부끄럽다"며 "말을 타고 엄마가 학칙을 바꾸면 이화여대에 갈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밝혔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60)씨와 딸 정유라씨 (사진=자료사진)
비선실세 최순실(60) 씨의 딸 정유라(20) 씨가 승마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과정이 각종 특혜로 얼룩져 있었음이 드러나자 이를 조롱한 것.

그는 이어 "대통령이 자기 가족사만 들먹이는 현실이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다"면서 "이런 세상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촛불 든 어른들이 만들어주자"고 울먹였다.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밝힌 한 남성은 "요새 애 낳기 힘들다 취업 힘들다 하며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장사가 너무 잘 된다"면서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고민들이 다 해결되고 장사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경찰과 대치중인 경복궁역 사거리(내자동 로터리)에 설치된 방송차량에는 전남 여수고 2학년 한 남학생이 올랐다.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이 학생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꼬아 부르며 "길라임 씨, 7시간 동안 보톡스를 맞았는지 최순실 하고 굿판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뭘 했든 사람은 구하고 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차가운 물 속에 몇백 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누나, 누군가의 동생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어 "오래 걸리더라도 지금 이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지켜달라"며 "이 나라에 태어난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2016 민중 총궐기 대회'가 열린 가운데 청와대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들을 비롯해 '학익진'에 펼쳐진 여러 대의 방송차량 주변에는 자유발언을 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 수십 명이 대기중이고, 주변에서는 이를 경청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인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가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이후 2016년 서울 도심에서 재현된 모습이다.

한때 방송차량 사회자는 "혹시라도 자유발언 중 성차별이나 소수자 차별, 혐오 발언 등이 있을 경우 마이크를 끌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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