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7시간 때문?…최순실 단골 병원 '맹탕 조사'

김영재 성형외과서 가명으로 '프로포폴' 처방?…정부 조사 '맹탕'

문이 닫힌 김영재 의원. (사진=김연지 기자)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단골 병원인 '김영재 의원(성형외과)'을 둘러싼 의혹이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최씨와의 관계와 각종 특혜 의혹 등에 대한 김영재 원장의 해명이 전혀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 과정도 석연치 않다.

◇ 김영재 원장, '난 최순실 몰랐다?'…무엇을 감추나

'국정 농단'으로 구속된 최순실 씨.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보건복지부가 15일 발표한 '김영재 의원 조사결과 및 향후 조치계획'을 보면 최 씨는 '최보정'이라는 가명으로 2013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약 3년간 총 136회의 진료를 받았다.

김 원장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에야 최보정이 최순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강남보건소 측에 밝혔다.

하지만, 최 씨는 약 7.6일마다 한 번꼴로 병원을 자주 찾은 이른바 'VVIP 손님'인 점을 고려하면 김 원장의 이런 해명은 진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특히 최 씨는 김영재 의원에서 PRP, 필러, 보톡스, DNA, MTS 등 피부 미용과 관련한 다양한 시술과 주사제를 처방받았다. 딸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 씨도 이 병원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 씨의 소개로 김 원장으로부터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김 원장은 최 씨와 상당한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김 원장의 가족회사인 존제이콥스와 와이제이콥스메디컬은 박근혜 대통령 해외 순방 때 '경제사절단'에 3차례나 포함됐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은 "김영재 성형외과의 해외진출을 도우라"고 모 컨설팅업체에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신생업체인 존제이콥스의 화장품 세트는 청와대 명절 선물로 선정되고 신라 면세점과 신세계 면세점에도 입점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도 아닌 김 원장이 지난해 7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성형외과 외래교수로 위촉됐던 배경도 의문이다.

여기에다 산업부는 올해 약 4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김 원장 부인이 대표로 있는 와이제이콥스메디컬에 지원하기로 해 특혜 의혹도 일고 있다.

◇ 최순실은 왜 가명으로 김영재 성형외과를 들락거렸을까

고객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최순실, 최순득 씨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그로인한 정권유착으로 각종 정부정책 수혜와 국고 지원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차병원그룹 계열 차움병원. (사진=박종민 기자)
최순실 씨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김영재 성형외과에서 2013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진료를 받았다.

또 청담동에 있는 차병원계열 차움의원을 2010년 8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약 6년간 다녔다.

최 씨는 2013년 10월부터 2016년 6월까지는 두 병원을 동시에 이용한 셈이다.

하지만, 차움의원는 달리 김영재 성형외과에서는 가명인 '최보정'이라는 이름으로 진료기록부가 작성돼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최 씨가 프로포폴(일명 우유주사)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가명으로 처방받아 이를 청와대로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최순실 씨 실명으로 기록된 차움의원 진료기록부에는 자낙스와 리보트릴정, 리제정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받은 내역이 발견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확인한 결과, 김영재 성형외과는 2013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프로포폴 주사 20㎖를 1회당 500병씩, 총 6차례 공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20㎖로 주사할 경우 성인 남성 1000명분의 프로포폴을 공급받았다.

◇ 식약처 '맹탕 조사' 후 서둘러 "문제 없다" 발표

최순실씨를 진료하며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모 원장의 성형외과 병원.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김영재 성형외과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는 매우 형식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강남구 보건소에 지시한 김영재 성형외과에 대한 조사 항목은 ▲최근 2년치 마약류관리대장 보존 여부 ▲처방전에 의하지 않은 마약류 투약 여부 ▲마약류관리대장과 실 재고량 일치 여부 ▲마약류 저장시설 다중잠금장치 설치 여부 등에 그쳤다.

그리고 "조사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의료용 마약류를 취급하는 병·의원에 대한 일상적인 점검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처방전에 의하지 않은 마약류 투약 여부'를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는냐는 질문에 대해서 식약처 대변인실은 "담당자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식약처는 모든 조사를 강남구 보건소 직원 2명에게 떠넘기고 단 한 명의 직원도 현장에 보내지 않았다. 마약류를 폐기한 기록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았다.

(사진=자료사진)
가명을 쓴 최순실 씨에 대해 향정신성의약품이 처방됐는지, 또 실제로 처방됐다면 차움의원처럼 그 가운데 일부가 청와대로 빼돌려졌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지 않았다.

전 국민적 관심과 의혹이 집중된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부실한 조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방송에 출연해 “김영재 성형외과의 마약류관리대장만 봐서는 안 되고 실제로 차트에 의료용 마약류를 투약한 것으로 기록된 환자가 실제로 투약을 받았는지 일일이 '수진자 조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는 처방전을 볼 권한도 없고 김 원장을 수사할 수도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 보건복지부, '조사 범위' 축소…대리처방·대리진료도 확인 안 해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보건복지부 조사 역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김영재 성형외과에 대한 조사 범위를 '최순실 씨에 대한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여부'로 한정했다.

차움의원과는 달리 '대리진료'와 '대리처방' 여부와 언니 최순득 씨에 대한 내용도 조사 대상에서 아예 빼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최순실 씨 일가에 대해 의료용 마약류 처방 및 외부 유출 여부와 박 대통령에 대한 시술 여부 등은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차움의원에 대한 조사에서는 담당의사 김상만 씨가 최순득 씨 이름으로 대리 처방한 다음, 직접 청와대에 가져가 정맥주사는 간호장교가 또 피하주사는 본인이 직접 박 대통령에게 놓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또 조사를 맡은 강남구 보건소는 11일 김영재 성형외과를 단 한 차례 방문해 조사를 마쳤다.

차움의원의 경우, 2차례에 걸쳐 11일~12일, 14일~15일 등 나흘 동안 조사를 진행한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졸속으로 조사를 끝냈다.

또 차움의원에 대해서는 의사 4명과 간호사 11명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김영재 성형외과의 경우, 김 원장 1명의 진술을 듣는 것으로 모든 조사를 마무리했다.

보건복지부도 식약처와 마찬가지로 현장에 단 한 명의 직원도 보내지 않았다.

◇ '세월호 7시간' 관련 중요 단서…이제 '검찰 의지'에 달려

박근혜 대통령의 '진짜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득 씨. (사진=CBS노컷뉴스 SNS팀)
결국 강남구 보건소는 이런 부실한 조사를 바탕으로 '진료기록부 기재 내용만으로는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강남구 보건소 관계자는 "우리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에서 공문을 통해 지시한 사항만 조사를 진행했을 뿐"이라며 "김 원장을 수소문해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세한 조사 내용은 외부에 밝힐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향정신성의약품 문제는 식약처에서 조사를 지시했다"면서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가명을 사용한 이유와 최순실 씨와 김 원장과의 관계 등 의혹이 많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남구 보건소는 17일 '김영재 성형외과'에 대해 검찰에 정식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따라 '김영재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규명할 책임은 이제 검찰로 넘어갔다.

언론에 의혹이 처음 보도된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취재가 시작되면서 김영재 성형외과 내의 각종 자료가 이미 파기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 수사가 겉돌 경우에는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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