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회계투명성 개선 방안의 하나로 금융감독원에 ‘금융거래정보 요구권(계좌추적권)’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예외조항에 ‘회계감리 목적’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유력하다.
계좌추적권은 국가기관이나 유관기관이 특정인의 금융거래 내역을 본인 동의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이다.
금감원은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회계감리 시 계좌추적권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유권해석이 나오면서 현재는 불공정거래행위 등 특정 위법행위를 조사할 때만 계좌추적권이 허용돼 있다.
금감원은 계좌추적권이 허용되면 분식 회계를 효율적으로 적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허위 계좌를 활용해 매출이나 자산을 부풀리거나 대주주의 횡령을 돕는 기업이나 개인을 손쉽게 적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감리를 위한 계좌추적권이 허용돼 있다"며 "금감원이 필요할 때만 제한적으로 법에서 의해 계좌추적권을 행사해 분식 회계를 적발한다면 시장에서 분식회계가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의 회계투명성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한 고윤성 숙명여대 교수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통해서는 회계 부정 여부를 적발하기 힘들다"며 "실제 돈의 정확한 흐름을 알아야 분식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정밀한 제무재표 감리를 위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금감원에 계좌추적권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도 "대우조선도 현금의 흐름을 정확하게 분석했으면 분식회계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감리를 제대로 하려면 계좌추적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장없이 개인의 내밀한 정보인 계좌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검찰 관계자는 "계좌 정보도 통화내역 못지 않게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이라며 "법원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제한적으로 하더라도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도 "계좌추적은 중대범죄 수사일 경우, 영장이 나와야 집행할 수 있다"며 "영장주의에 의해 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제한된 범위 내에서 허용돼야
하지만 대우조선 사태에서 보듯 분식 회계의 경제적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엄격한 제한 내에서 계좌추적권을 허용하는 게 맞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회의 사후 통제를 받게 하거나 중립적인 외부위원회에 계좌추적 착수나 결과 등을 보고, 승인받게 하고 계좌추적 결과를 외부에 유출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등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기창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사적 주체 간의 금융 거래에 대해 공권력이 함부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허용돼서는 안 된다"면서도 "외형적으로 명백히 의심있는 거래 등 범죄의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 한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법조인도 "갈수록 거대기업들의 부정을 잡아내기 힘든 상황에서 회계 부정에 대한 상시 감독을 위해 계좌추적권 허용은 꼭 필요하다"며 "분식 회계야 말로 꼭 적발해야 할 중대 범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의견 수렴 중이며 구체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며 "개인 정보 문제도 있기 때문에 기준 등에 대해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