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근대 역사학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조선인의 ‘조선역사’는 어떻게 성립되었고, 일본인의 ‘조선사’는 식민지배 정책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일본식 교육 시스템인 ‘3분과체제’는 식민지 조선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그리고 차별적·위계적 고등교육체제의 정점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식민주의 역사학을 퍼뜨린 일본 연구자와 더불어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식민주의 역사학의 계보를 이어온 조선인 연구자들, 이와 반대로 민족주의 역사학을 이끌며 독립적인 대상으로서 조선역사를 연구한 조선인 연구자들은 물론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역사학계의 네트워크도 한 눈에 살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제도·태도·인식으로서 역사학’을 구분하고, 한국 역사학의 연구기반과 재생산의 기초를 학술사의 측면에서 고찰한다.
‘제도로서의 역사학’이란 측면에서는 대학 사학과 중심의 아카데미즘과 일본식 교육시스템인 3분과체제가 형성·정착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하며, 일본식 교육시스템의 중심축이었던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학 사학과의 제도와 운영을 파악한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식 대학 시스템이 도입되는 가운데 식민 유산이 사라지지 않은 채 한국 대학의 사학과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살폈다.
‘태도로서의 역사학’에서는 연구자 개개인과 집단이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검토했다. 연구자 개개인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 책에서는 새롭게 대학과 전문학교, 그리고 역사 관련 조직의 내부 또는 그들끼리의 상호관계를 역사인식과 적극 연계해 살펴보았다. 지식과 권력의 관계는 해방 후 한국인이 직접 사학과를 제도화하고 역사학을 수립해가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인식으로서 역사학’을 살피기 위해, 1930년대 역사학의 동향을 잡지와 단행본, 학회와 학술회의 등 여러 유형과 내용으로 학술 토론, 학문 논의가 이루어진 공론공간을 통해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이러한 공론공간을 ‘학술장(學術場)’이란 개념으로 다룬다. 넓은 범위에서 전체 학술지형을 살핌으로써, 조선인과 일본인, 식민주의 역사학의 연구 주체, 친일과 반일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역사학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식으로서 역사학’의 측면에서 역사학의 지적 원천과 한국고대사의 구성 체계에 대한 인식을 추적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사를 연구하고 가르친 사람들, 특히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교수들과 식민지 조선의 조선인 연구자의 역사인식을 검토했다. 그리고 일부 조선인 연구자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친 일본인 연구자 등의 인식도 함께 살핀다. 또한 이를 해방 이후 한국인 연구자들의 연구와 비교하며 이들 사이의 미묘한 교집합, 즉 인식에서의 연속과 단절을 파악하고 그 이유를 추적했다.
이와 관련해 민족사학과 민족주의사학, 식민사학과 식민주의 역사학을 엄밀히 구분했다.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을 가르는 기본 기준은 민족이다. 그래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역사학을 각각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이라 말할 수 있다. 민족주의사학은 항일의 태도를 견지한 역사학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했다. 민족사학이라 해서 꼭 민족주의사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하면 식민주의 역사학에는 일본인의 역사학인 식민사학만이 아니라 조선인의 역사학 일부도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엄밀한 구분을 통해 민족주의사학 내에 ‘실증(주의)사학’, 곧 문헌고증사학을 포함시키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며, 동시에 우리 안의 식민성, 한국 역사학계의 식민사관까지를 포함하는 역사인식을 식민주의 역사학으로 설명했다.
역사학은 식민통치하에서 민족을 전면에 내세우는 민족주의역사학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일본에 대결하는 자세와 역사인식을 가지며 역사학은 독립학문으로 분립할 수 있었고, ‘운동’으로서 근대 역사학이 출발한 것이다. 식민지 시기 민족주의사학과 함께 존재한 것은 한국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친 식민주의 역사학이었다. 관제사학의 거점이었던 조선사편수회와 또 다른 기축인 경성제국대학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 식민주의 역사학은 관제적 공공성을 구축해 식민지 지배 담론을 장악하려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전략의 일환이었다.
1930년대에는 관제사학과 민족사학 모두 한국사를 깊이 있게 분석한 연구물을 꾸준히 생산해냈는데, ‘조선연구열’이란 말이 회자될 만큼 조선을 학문대상으로 하는 움직임이 크게 나타났다. 하지만 조선연구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식민주의 역사학과 민족주의사학 사이에 경계가 더욱 선명해졌다. 이 책에서는 민족을 불문하고 식민주의 역사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의 여러 연구경향을 비교분석했다.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제도로서 사학과와 그를 둘러싼 역사학계의 움직임을 정리하는 한편, 해방 이전과의 연속·단절·변용의 측면에서 역사학의 변화 양상을 추적했다.
식민지 시기에 성립한 근대 지식체계, 그중에서도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해방공간에서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대학의 각 학과로 제도화되었다. 해방 후 미국식 대학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역사학에서는 결국 ‘3분과체제’가 견고히 이식되면서 제도로서의 식민성을 내재화해갔다. 3분과체제를 내재화한 주체는 교수들이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식 대학제도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로, 식민지 유산이라는 측면에 대한 고민 없이 그것을 학과 속에 유입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과 이념의 대립은 다양한 관점의 역사학이 한반도에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했고, 한국 역사학계가 문헌고증사학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사실상 일원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내부에 고착화되고 있는 식민성을 되돌아볼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하지만 1950년대 식민주의 역사학의 역사인식과 문헌고증사학의 학문 자세를 넘어서려는 아주 작은 움직임이 개인 차원에서 시작되었고, 1960년대 이후 타율성과 정체성으로 대변되는 식민주의 역사학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1970년대 들어 한국사 학계는 민중을 재인식하고 분단을 발견하는 한편, 식민지 시기와 현대 한국사학사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표출하며, ‘비판적 한국학’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야와 태도로 한국사 학계의 기존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신주백 지음 | 휴머니스트 | 448쪽 | 2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