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시인들, 가슴을 울리다

신간 '시인의 울음: 한시, 폐부에서 나와 폐부를 울리다'

시인들이 남긴 말은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왜 그럴까? 시(詩)란 아름다운 ‘울음’이기 때문이다. ‘울음’이란 슬퍼서 우는 것과 가슴을 울리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중의적인 단어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물은 균형을 잃으면 운다.” 한유의 이 말은 중국문학에서 ‘불평즉명’(不平則鳴)이라는 성어가 됐다. 사람은 감정이 물결치면 운다. 허무해서 울고, 서러워서 운다. 그리워서 울고, 외로워서 운다. 시인은 우는 사람이다. 기뻐서도 울고, 슬퍼서도 운다. 시인은 그 울음을 아름다운 언어와 노랫말에 실어 문자로 남긴 사람들이다. 음악인은 노래나 악기로 울고, 화가는 그림으로 운다. 영화인은 영화로, 소설가는 소설로 운다. 모든 문학과 예술인은 우는 사람들이다. 운다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울림’이다. 살아있으므로 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를 읽으며 공명(共鳴)한다.

비록 과거의 사람들, 과거의 울림이지만 신산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도 똑같이 공명하는 울림이다. “칼을 들어 끊어도 흐르는 강물(抽刀斷水水更流), 술잔 들어 달래도 더하는 시름(擧杯消愁愁更愁)”이라는 이백의 시구를 읽으며 시름겨운 우리 삶을 떠올린다. 이백처럼 우리도 “이 세상 산다는 게 뜻 같지 않다.”(人生在世不稱意)
굴원이 멱라강에서 쓸쓸히 「이소」를 노래하고 어부와 대화하던 그 시절부터 두고두고 사람들을 울린 중국 최고의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시인의 울음'에서 소개한다. 이백, 두보, 설도, 육유, 백거이, 어현기, 이욱, 이청조, 소식, 도연명, 맹호연, 왕유 등이 그들이다.

한시(漢詩)는 중국의 옛 시다. 언어가 다른 현대 한국인이 한시를 소리 내어 읽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읽는다 해도 그 맛과 멋을 알기엔 어려운 장르일 수밖에 없다. 우리말로 번역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그래서인지, 이제껏 ‘한시’는 시어가 주는 감각적인 표현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전고(典故)와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중국의 옛 시를 소리 내어 읽게 만든다. 저자 안희진 교수는 중국의 옛 시를 우리말로 맛깔나게 녹여냈다. 현대시만큼이나 새롭고 감각적이다.


고운손,
황등술,
온 마을에 봄 오는 버드나무 담.
봄바람,
헛사랑,
시름 가득 몇 해인가 이별의 슬픔.
틀, 렸, 네.

- 육유, 「채두봉」중에서

“틀, 렸, 네.”의 한시 원문은 섞일 착(錯)자가 세 번 적혀 있다. 착착착(錯錯錯). 이 세 글자가 우리말로 번역되면 “틀, 렸, 네.”다. 이제껏 한시 번역에서는 보지 못한 감각적인 번역이다.

나를 두고 가 버린 지나간 세월
남은 것은 내 마음 휘젓는 오늘.
아득한 가을바람 기러기 난다
풍경을 마주하고 술잔을 들자.

- 이백, 「선주의 사조루에서 교서 이운을 전별하다」중에서

이백의 시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작품들이 많지만, 우리말의 운율까지 맞추어 읽으면 이처럼 신선하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쓸쓸한 가을하늘이 떠오르는 시 한 편이다.

유아지경에서 무아지경으로

청나라 말기의 학자 왕국유는, “시에는 유아지경(有我之境)이 있고 무아지경(無我之境)이 있다”고 말한다. 이 두 용어를 곧바로 번역하면 ‘내가 있는 정경’과 ‘내가 없는 정경’이다. 즉, ‘유아지경’은 시에 시인의 감정이 배어 있는 정경이고, ‘무아지경’은 시인의 감정이 안 보이는 정경이다. 왕국유의 이 말을 기준으로 중국의 시를 살펴보면, 중국의 옛 시는 크게 유아지경의 시에서 무아지경의 시로 유행이 바뀌었다. 물론 유아지경의 시와 무아지경의 시를 동시에 구사한 소식과 같은 시인도 있지만 대체로 중국의 옛 시는 유아지경에서 무아지경으로 넘어왔다.

“눈물진 채 물어도 꽃은 말 없고(淚眼問花花不語), 그네 위로 날리네, 지는 저 꽃잎(亂紅飛過?韆去)”이라고 읊은 구양수의 시 「접련화」(蝶戀花)는 왕국유의 기준으로 보면 유아지경의 시이다. 시어 속에 눈물을 흘리며 꽃을 바라보는 시인이 고스란히 보인다.

“잔잔히 이는 물결(寒波澹澹起), 유유히 내리는 새(白鳥悠悠下).” 금나라 시인 원호문이 읊은 「영정에서 작별하다」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친구를 두고 떠나는 길이 아쉬워 강가에 말을 매고 함께 앉았다. 한 잔 술을 들고 얘기를 나누며 주변의 경치를 본다. 시인이 바라본 이 경치 속에 시인의 심경이 녹아 있다. 무심하게 시인의 눈에 들어온 정경. 이는 사실 시인이 자신의 심경과 같은 정경을 포착한 것이다. 이것이 무아지경의 시이다.

또 있다. 무아지경의 가장 대표적인 시. 바로 도연명의 「음주」(飮酒).
“울 밑에서 국화 따다(採菊東籬下), 우두커니 남산 보네(悠然見南山).”
굴원 이후 대부분의 시들은 인생의 무상함이나 삶의 고단함, 사회적 좌절 등을 그렸고, 이별의 슬픔, 사랑의 갈망, 소외의 시름 등 감정을 표출한 유아지경의 시를 써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시가 있었던 것이다. 강엄이나 사공도, 원호문의 시 같은 것은 잔잔하기 그지없다. 감정의 물결이 잦아든 것이다. 잦아들어 마치 무미한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담백해서 시인에게 감정이 없는 듯하다. 사실 가만히 보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정경 속에 녹아 버린 것이다. 이는 아마 시인 자신의 내적 조화로움에서 출발하는 시선일 것이다. 이런 노래는 왕국유의 말대로 ‘무아지경’이라는 시적 경지를 열어 보인다.

이 책에서는 유아지경의 시를 ‘1부 시인의 노래’에서 다루고, 무아지경의 시를 ‘2부 어부의 노래’에서 다룬다.

안희진 지음 | 돌베개 | 384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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