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들은 누구보다 '사랑받던 MBC'를 그리워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4년 4개월 만의 '거리 집회' 현장 가보니

10일 오후 6시 45분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이하 MBC본부)가 서울 마포구 상암MBC 사옥 앞에서 'MBC 방송 정상화를 위한 전국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청와대 방송 OUT'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제공)
최근에 JTBC 많이 보시죠? 언제부터 JTBC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방송사가 됐을까요? 사실 그거 MBC가 하던 역할 아니었습니까. 시민들의 반응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지역은 좁다 보니까 (현장에서) 쫓겨날 정도는 아니지만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말투가 비아냥거립니다. 답답합니다. 대한민국 어떤 언론사가 6개월 월급 안 받아가면서 파업했습니까. 10명 해고되고 부당징계, 전보되고 탄압 받았습니까. 정권으로부터 언론 지키자고 했던 게 우리 조합원들인데 지금은 어디 가서 얘기도 못 꺼냅니다. 이대로 가면 정권이 바뀌어도 청산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청산될 대상은 아니잖아요. 우리 그렇게 살지 않았고 투쟁해 왔잖아요. 그래서 바꿔야 합니다. 자주 모입시다. 서로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고 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MBC, 돌아올 수 있습니다" _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춘천지부 김창식 조합원

MBC 구성원들이 4년 4개월 만에 밖으로 나왔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170일간 파업을 했던 2012년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다. 비선실세 파문으로 하야·자진사퇴 요구가 나오고 있음에도 꿋꿋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호하는 '청와대 방송' MBC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마음이 전국 팔도에 흩어져 있는 노조원들을 뭉치게 했다.

10일 오후 6시 45분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이하 MBC본부)는 서울 마포구 상암 MBC 사옥 앞에서 'MBC 방송 정상화를 위한 전국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당초 사옥 1층 로비에서 진행하기로 했으나, MBC 사측은 이날 오후 4시부터 1층 출입구를 모두 잠가버려 직원은 물론 일반인들의 출입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비 온 뒤 쌀쌀한 날씨에도, 결국 MBC본부는 하는 수 없이 야외에 자리를 펴야 했다. 그러나 2시간여 진행된 결의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400여 명에 달했고 분위기 역시 힘찼다. 다시 '사랑받는' MBC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 "국민을 위해 방송하던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MBC본부 조능희 본부장은 "요즘 MBC 현실 보면서 걱정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이러다가 MBC 망하는 것 아닌가, 하고. 저들(경영진)은 MBC가 망하고 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인사조치하고 방안 마련해야 하는데 MBC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몰라라 해서 시간만 간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국민 재산인 전파를 이용해 방송하면서 국민이 원하고 시청자가 필요로 하는 방송을 못하고, 국민은 도탄에 빠져 있는데 편히 월급만 받으면서 MBC 다니는 것 자랑스럽느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며 "간단하다. 지금 이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있다. 밖으로 쫓겨난 우리 조합원들, 바른말하고 취재 잘하고 국민과 시청자를 위한 방송을 하던 기자, PD, 아나운서, 엔지니어, 전문방송경영인들을 다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바로 정상화될 수 있다"고 말해 조합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조 본부장은 "최근 MBC에서 벌어진 상황이 참담하지만 저희들은 계속 '공정방송'을 찾기 위한 조합의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며 "방송인의 양심과 상식이 살아있는 한 MBC본부는 영원할 것이며, 저 불의의 세력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MBC 방송 정상화를 위한 전국 조합원 결의대회'에 참여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와 18개 지역지부 조합원들의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방창호 수석부본부장은 "예전 취재현장 나가 보면 전국의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이고, 방송하면 MBC 아이가', 'MBC가 최고유', '전 MBC만 봐요'. 한때 이런 말 들으면서 신명나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말들이 MBC맨으로서 살아가는 자랑이었고 동력이었다"며 "김재철을 시작으로 현 안광한 체제까지 몇 년간 MBC는 달라졌다. 권력과 자본에 머리 숙이고 국민과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는 방송을 해 왔다"고 비판했다.

방 부본부장은 "시청자들이 없으면 방송사의 존재가치도 없다"며 "현재 MBC 경영진들과 방송 책임자들은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언론농단' 사태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그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 또한 공정방송을 보장하는 단협 조항은 즉각 체결돼야 한다. 외부에 나가 있는 이미 검증된 인력들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방송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 이호찬 간사는 "조능희 본부장님이 조합원들을 모아보자, 집회해 보자고 늘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폭압적인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얼굴 내밀고 저항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잘 이뤄지지 못했다. 더 이상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목소리 죽이고 있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기에 다시 모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한겨레가 9월 20일 특종보도한 후 근 한 달 동안 MBC는 최순실을 최순실이라 부르지 못하고 비선실세라고도 하지 못했다. 10월 26일에서야 뒤늦게 특별취재팀을 꾸렸는데 특취팀에 간 동료기자들이 놀라더라. 한 달 동안 MBC뉴스가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연락처 하나 없고 그림이 없어, 이미 (다른 언론사가) 훑고 지나간 빈 건물 들어가서 문고리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MBC는 최순실만 마녀로 만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병언이 (현재의) 최순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성역이다. 민심이 들끓어도, 지지율이 떨어져도 보도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청와대 방송이고 지금의 MBC 모습이다. 이게 언론이냐"면서 "안광한 사장, 김장겸 보도본부장, 최기화 보도국장은 MBC뉴스를 그만 망치시고 어서 나가십시오. 지금 가장 힘들고 외로워 할 박근혜 대통령이 걱정되면 청와대에 가서 직접 보필하라"고 전했다.

◇ "쪽팔려서 못 살겠다, 안광한은 물러가라"

상암MBC 앞마당에 펼쳐진 '청와대 방송 OUT' (사진=김수정 기자)
대구지부 도건협 지부장은 "쪽팔려서 못 살겠다 안광한은 물러가라"는 구호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도 지부장은 "쪽팔린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냥 쪽팔린 정도가 아니다. 제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 성난 시민들이 우리 MBC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때 광주MBC가 불탔고, 땡전뉴스할 당시 대구MBC에도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그 일이 다시 안 벌어질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나. 언제든지 성난 군중이 MBC로 몰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게 두려워서라기보다 우리 스스로가 더 이상 이렇게 하다가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지금 MBC에 필요한 것은 영양제가 아니라 제초제다. 부역자는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지금이 우리가 싸울 때다. 부역자를 심판해야 MBC가 살아난다. 우리는 동지다. 함께 싸우자"고 당부했다.

대전지부 연성호 홍보부장은 "요즘 시민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MBC 징하다', '끝까지 너무한다'는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와중에도) MBC만 정권의 편에 서서 침묵하고 있다"며 "경영진들은 비상경영을 줄곧 외치고 있는데 그 비상경영 시작이 본인들의 퇴진인지 모르나 보다. 시민들을 위해 MBC는 공정방송으로 돌아가야 한다. MBC 정상화를 위해 지역에서도 열심히 뛰겠다"고 강조했다.

광주지부 이재원 조합원은 "광주MBC는 80년 5월에 시민들에 의해 불탔다. 지금 심정으로서는, 솔직히 시민들이 MBC에 화염병을 던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MBC가 정말 영향력이 아무것도 아닌 그런 매체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절을 언제까지, 얼마나 더 참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어서 공정방송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함께 투쟁하며 공정방송을 이룩하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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