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트럼프 대통령, 내 생애 최악의 사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세금·투자·인재 확보에 비상걸린 미국 IT 업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들에게 미쳐질 공포와 충격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혁신 의제들은 다시 되돌아 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9일(현지시간)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 실리콘밸리가 좌절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트럼프는 유세 기간 내내 '미국 재건'을 강조하며 미국내 제조산업 부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이민자들로부터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 세계화 중심의 기술 업계, 트럼프 '미국 울타리'에 절망감 커

애플이 대표적인 표적이 됐다.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아이폰이 아시아 국가들이 생산한 부품으로 중국에서 조립 생산돼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팔려나가면서 미국의 재정은 물론 국내 노동자들이 일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애플의 제조시설을 미국내로 가져와야 한다며, 중국산 제품에 대해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럴 경우 제조원가 상승으로 애플의 매출과 순익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특히 해외의 유수 인력을 유치함으로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는 스스로를 '미스터 브렉시트'라고 부르며 반(反) 이민자 정책을 강조하는 트럼프를 받아들이기는 애시당초 무리였다. 실리콘밸리 기업들 대부분이 경영자는 물론 엔지니어까지 다양한 인종과 국가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퓨처버즈의 구글 분석 전문가 아담 싱거는 "대선의 결과는 실리콘밸리에 문제를 안겼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이제 경기침체기를 의미한다. 스타트업과 대기업 모두 곤경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플레어 캐피탈의 제네럴 파트너인 마이클 그릴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환경과 무역 등에서 앞으로 4년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광범위한 혁신 의제와 우리의 중요한 사회 구성원들(소수민족, 여성, 장애인, 이주자 등)에게 미칠 충격과 공포는 물론, (트럼프처럼)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인기투표는 '위임통치'의 의미를 훼손시켰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됐다"며 "트럼프가 내건 대선 공약들을 얕봐선 안된다"고 우려했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도 지난 4월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트럼프의 반(反) 이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컴비네이터를 이끌고 있는 샘 알트만(Sam Altman)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있는 최악의 사건 인 것 같다"고 혹평했다.

초고속 진공관 자기부상 시스템을 개발하는 하이퍼루프 원의 공동설립자 셜빈 피셔버(Shervin Pishevar)는 "만약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캘리포니아의 독립을 시작하는 법안을 지원하겠다"며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를 미국 연방에서 떼어내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대통령 당선자
◇ 美 벤처 캐피탈 업계 "장례식 같은 분위기"…IT 업계 H1-B 비자 축소에 반발

CNBC 방송은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탈 업계의 반응은 장례식과 같았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열린 IT 전시회 '2016 웹 서밋(Web Summit)'에 참가한 주요 IT 기업 관계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특히 미국의 IT 업계가 앞도적으로 지원한 후보는 클린턴이었기에 그 충격은 컸다. CNBC에 따르면 미국 주요 IT 기업들은 클린턴에게 트럼프보다 60배 많은 300만달러(34억5000만원)를 후원했다.

웹 서밋에 참가한 224개 벤처 캐피탈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94%가 클린턴의 승리를 낙관했다. 하지만 결과지를 받아든 이들의 반응은 절망에 가까웠다.

정치적 입장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한 관계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장례식같은 분위기다", "빌어먹을 쇼. 기차 사고가 난 것 같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실리콘밸리 기술 업계의 이같은 반응은 트럼프의 반(反)이민 정책과 여성 혐오로 각인된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과 관련 있다. 역시 다양한 인재를 유치할 수 없을 경우 '혁신'을 억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루 벤처스의 토니 콘라드(Tony Conrad)는 9일(현지시간) 웹 서밋 회의 패널 토론에서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의 축소는 관련업계를 패닉에 몰아넣을 것"이라며 "이는 실리콘밸리 기업들로하여금 전문인재의 유출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H1-B 비자는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비자로 트럼프는 이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위축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투자자는 "스타트업이 향후 자금 조달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토니 콘라드는 트럼프 정부 안에서 실리콘밸리의 투자 위축 우려에 대해 "벤처 캐피탈의 경우 낙관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며 "자칫 좋은 회사들에 투자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2008년 당시 핏빗(fitbit)이라는 작은 회사에 투자를 했다. 10일 뒤에 (금융위기로) 시장이 붕괴(됐지만 좋은 결과를 얻게)됐다. 이처럼 좋은 기업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핏빗은 세계1위의 웨어러블 기기 업체로 2007년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박과 에릭 프라이드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동 창업한 회사다. 2015년 상장해 기업가치는 41억달러(약 4조7천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우려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탈 틀라이너 퍼킨스의 무드 로가니는 웹 서밋 패널 토론에서 "트럼프가 선거운동 기간 주장했던 병원에나 보내야 할 '허위 광고'(공약)들은 실제 실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 IT 업계는 트럼프가 세계화 보다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에 무게를 두고 '퍼스트 미국' 정책을 펼 경우 미국 스스로가 세계 경제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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