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은 트럼프 당선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을 나라"라며 "신시장을 개척해 대미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실종된 경제 컨트롤 타워를 서둘러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유일호 "글로벌 금융시장 충격 불가피…불확실성 확대될 것" 우려
유일호 부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86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시장 동향과 주요 경제정책 평가 및 대응방안 등을 논의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유 부총리는 "개표 시작 이후 미국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시장 불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도 주가지수가 하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짚었다.
이어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더 높게 평가됐던 만큼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당분간 국제금융시장의 위험회피 성향이 고조되면서 변동성이 지속되고, 실물 측면에서도 미국의 경제정책 불확실성 등으로 세계경제의 하방위험이 증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으로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 이후 미국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국내정책에 있어 제조업 부흥, 인프라 투자확대 등을 통한 국내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우선목표로 둘 것"이라며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현재보다는 보호무역주의 성향과 주요국에 대한 환율관련 압박 강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전문가들 "韓, 트럼프 쇼크 직격타 맞을 듯…美 의존도부터 줄여야"
경제전문가들 역시 유 부총리의 우려에 인식을 같이 했다.
심상렬 광운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는 "한국은 트럼프 당선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국가"라며 "오하이오 주 등 트럼프 당선자에 몰표가 나온 러스트 벨트(Rust Belt·미국 제조업 및 중공업 중심지였으나 불황을 맞은 중서부 및 북동부 지역)의 쇠락을 부른 국가가 바로 한국과 같은 신흥국"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경제를 저해한 '깨진 약속'의 대표적 사례"라며 재협상을 검토할 것이라고 공약했던 점을 지적하고 "트럼프로서는 부자 감세 등 내부 갈등을 부를 조치보다 손쉽게 지지자들의 결집을 부를 수 있는 선택"이라며 "FTA 재협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미국이 세운 기존 경제질서를 트럼프 혼자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어 하루아침에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더구나 트럼프 당선자는 정치권 외부에 있던 인물이기 때문에 업무 파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가 서둘러 정책을 펼치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으로 그 자체로 큰 혼란을 부를 것"이라며 "우선 시장의 심리적 충격이 클 것이고, 한국처럼 비교적 작은 국가에게는 더 큰 시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혼란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유동성 공급 등 적극적인 시장 안정 조처도 고려해야 한다"며 "다만 원화 가치 하락은 자연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개입하지 않고 용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단기적으로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자본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에 외환시장,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의 비중을 줄이고 다양한 시장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박 교수는 "미국 시장에서 우리와 동병상련을 겪을 일본과 공조해 대응할 수 있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감소하면 가장 큰 이득을 거둘 나라가 중국인 만큼, 중국과의 협상 카드도 정비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 정부, 실시간 모니터링-범정부 대응체계 구축
이에 대해 유 부총리는 "양국이 전통적 안보 동맹국이자,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상호호혜적 이익을 향유할 필요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예정"이라며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우리 경제 및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트럼프 당선자가 강조할 것으로 보이는 인프라 투자 확대, 제조업 중심 정책, 화석에너지 등 자원개발 등의 분야에서도 양국간 상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교역·투자 확대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설명했다.
통상정책 변화에 대해서는 "TPP 미 의회 비준 여부, 한-미 FTA, 주요 통상현안 등에 대한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통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기회요인을 최대한 활용해 나가겠다"며 "이를 위해 범정부 대응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기재부·금융위·한은·금감원 등 금융·외환 관계기관들이 협력해 금융·외환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재부가 금융위·금감원 비상상황실과 연계해 지난 7일부터 운영중인 관계기관 합동점검반을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로 전환하는 등 하고,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수시로 개최해 시장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다.
또 금융기관의 외화유동성, 외채, 외환보유액 등을 관리해 대외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외화표시 외평채 발행·거시건전성조치의 탄력적 운영·민간부문의 외화자금 조달 등 외화자금 유입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한국 경제 및 금융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외투자자, 국제신평사 등과의 소통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한국 정부의 리더십이 실종돼 일사불란한 대처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려했다.
심 교수는 "1997년 IMF 위기 당시에는 민관이 협조하며 위기를 잘 극복했지만, 지금은 밖에서 해일이 밀려오는데 한국은 대통령도, 경제부총리도 배의 키를 쥐지 못하고 있다"며 "일시적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보호주의로의 회귀가 우려되는 거대한 변화인 만큼 서둘러 한국 경제의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