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총리'냐 '권한대행 총리'냐…박 대통령이 밝혀야 할 점

박 대통령 제안은 헌법 86조에 규정된 내용…"71조(직무수행 불가시) 원용해야" 주장도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가고 있다. 야당과의 협의나 예고없이 이뤄진 전격적인 회동이다. (사진=윤창원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국무총리를 추천해달라며 국회로 공을 넘긴 가운데 총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혼미한 정국을 풀어갈 첫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제안이 모호하고 '2선 후퇴'에 대한 명시적 약속이 없기 때문에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특히 청와대가 국민의정부 비서실장(한광옥)과 참여정부 정책실장(김병준)에 이어 현 야당 대표(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에게까지 총리직을 물밑 제안했던 일련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분열공작'의 덫을 경계하고 있다.

◇ 헌법 86조에 '실질적으로' 표현 덧붙여 착시효과…법적 효력은 미미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해준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등은 야당이 요구해온 책임총리와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제 야당의 선택이 남았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현행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과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아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헌법 86조 2항은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도록 했다.

박 대통령은 여기에 '실질적으로'라는 표현을 덧붙였을 뿐이다. 이로써 총리 권한이 더 강화된 듯한 착시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법리적으로는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 헌법은 이미 책임총리제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현행 규정만 잘 지켜도 총리의 권한 강화가 가능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단례로 헌법 87조는 총리가 장관 등에 대한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86조의 규정 때문에 대통령이 개입, 간섭할 여지가 충분하다. 정국 상황이 뒤바뀌면 박 대통령이 다시 국정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적어도 '법리적'으로는 막을 방도가 없는 셈이다.

야당이 대통령의 보다 확실한 약속을 요구하는 이유다. 야당은 "대통령이 선언을 해도 못 믿을 판에 그조차 안 하겠다면 어쩌겠다는 거냐"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이 설령 2선 후퇴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외교 및 국방에 관한 권한, 계엄 선포 등 비상대권,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 및 검찰총장 임명권 등을 누가 행사할 지에 대한 분명한 규정도 필요하다.

특히 최순실 사건 진상규명이 핵심인 현 상황에 비춰 검찰총장의 중립성은 사태 수습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 대표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국민의당을 찾아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헌법 71조 '직무수행 불가시' 원용해 거국내각·과도정부 운영

이렇다보니 야권 일각에선 헌법의 또 다른 규정인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에 주목으로 하고 있다. 책임총리 수준을 뛰어넘는 거국중립내각으로 과도정부를 이끄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최선의 대안이라는 판단에서다.

헌법 71조는 대통령 궐위(공석)나 사고로 인한 직무 수행 불가시 총리 등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도록 했다.

국정동력이 바닥나고 중대 범죄 위반 혐의까지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은 사실상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이미 드러난 정황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능력은 내치와 외치를 막론하고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즈는 최근 박 대통령을 최순실씨가 조종하는 로봇으로 비유한 만평을 싣는 등 박 대통령의 통치능력은 이미 국제사회의 입방아에까지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9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아마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헌법 71조에 의한 권한대행일 것"이라며 "국회에서 규정해야 할 것이, 우선 총리의 성격에 대해서 여야가 합의를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제안자인 박 대통령이 불분명한 부분에 대한 보충 설명과 분명한 약속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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