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수연의 10년은 헛되지 않았다

[노컷 인터뷰]

배우 한수연(사진=TS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한수연은 "얼떨떨 하다"고 했다.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하 '구르미')에서 야망에 가득찬 악역 중전 김 씨를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나 "요즘 데뷔 이래 가장 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드라마 종영 이후 '이게 내 일정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어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너무 기분이 좋고 매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죠. 작년 초 찍은 프로필 사진을 쓸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야 많아졌네요.(웃음)."

지난 2005년 데뷔, 특유의 청초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각종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에서 맹활약한 한수연은 10년간 구슬땀을 흘린 뒤에야 제대로 빛을 보게 됐다.

"'구르미'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어 기뻐요. 정말 치열하게 연기했고, 큰 사랑을 받았죠. 연기 잘하는 배우, 특유의 향기가 나는 배우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어요."

다음은 한수연과의 일문일답.

-'구르미' 캐스팅 전화를 받고 소리를 질렀다고.
"여배우라면 누구나 매력적인 악역에 대한 욕망이 있을 거다. 영화 '블랙스완', '나를 찾아줘' 등을 인상 깊게 보면서 '난 언제 매력적인 악역을 연기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구르미' 캐스팅 전화를 받자마자 너무 기뻐서 옆에 계시던 실장님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던 거다."

-선한 이미지인데, 악역 연기가 잘 맞았나.
"원래 악의 기운이 없다. 누굴 많이 미워해 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악한 인물을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웃으면서 서늘하게 섬뜩한 느낌을 주면 좋겠다 싶었다. 다행히 그게 감독님이 추구하던 바였다. 중전이 '어린 미실' 같은 이미지이길 원하셨던 거다. 미실이 친절하다가도 내지를 땐 내지르지 않았나. 나도 '다가가도 되나?' 싶을 때 확 내치는, 그래서 더 잔인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려고 했다."

-만족스러운 연기가 나온 것 같나.
"난 정말 연습벌레다. 대본에 필기 엄청 하고, 집에서 혼자 리허설도 하고 별 걸 다하는 편이다. '구르미' 역시 치열하게 했다. 나를 쥐어짜고 몰아붙여서 살도 빠지고 얼굴에 뾰루지도 많이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아플 정도로 몰입하고 나면 연기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진다. 이번에는 출산 장면을 촬영할 때 그 느낌을 받았다. 모든 걸 쏟아부었고, 그 이후 중전 역할에 훅 빠졌다. 그렇게 혹독하게 한 만큼 내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시청자 반응이 그래서 좋았나 보다.
"'앞으로 한수연의 연기는 믿고 보겠다' '내 생에 최고의 중전이었다' 등의 댓글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마냥 악한 캐릭터인 줄만 알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는 걸 알고 여자로서 공감했다는 반응도 좋았다. 시청자들의 응원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끝까지 집중해서 연기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엄청나게 늘었다고.
"10배 가까이 늘었다. 하루에 팔로워 수가 한명 두명씩 늘어난 적도 있었는데, 이젠 뒤에 'K'가 붙는다. 너무 감사해서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일종의 손 편지라고 생각하면서 소중하게 본다."

-한수연에게 '구르미'는 대표작인 건가.
"대중이 봤을 때의 대표작은 '구르미'가 맞다. 더 많은 분에게 나의 존재를 알렸으니까. 하지만, 스스로 꼽는 대표작은 영화 '너와 나의 21세기'다. 88만 원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데뷔작 후보에 올랐었다. 내가 헝가리에서 9년간 지내서 오해할 수도 있는데, 난 금수저가 아니라 항상 생계형 배우였고 연기하면서 공감을 많이 한 작품이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헝가리에서 지낼 때 '영화광'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간식 사 먹으라고 주신 용돈으로 혼자 영화관에 갈 정도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꿈을 키웠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연기 인생 10년을 돌아보자면.
"같은 시기 시작해서 너무 잘 된 친구도, 너무 잘 되었다가 그만둔 친구도, 여전히 나보다 어렵게 지내는 친구도 있다. 배우라는 직업은 선택받지 못하면 생계유지가 힘들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내가 진짜 배우 맞나' 하는 생각에 힘든 시간을 보낸 적도 많다. 이제는 그런 과정을 다 겪어 봤기에 지난 10년이 만족스럽다고 하기 보단 받아들이게 된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의 내 인생을 사랑한다는 거다."

-연기와 사랑에 빠진 사람 같다.
"솔로로 지낸지 4년 반 정도 됐다. 30대가 되고 나서부터 연애를 못 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회도 줄어든다. 결혼이라는 걸 생각할 나이가 되어서인지 신중해진다. 사실 연기에 집중하기도 벅차다. 아마 연애를 하고 있었다면 '구르미' 촬영을 온전히 끝내지 못했을 거다. (웃음)."

-연기 열정이 대단한 만큼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다.
"작품을 끝내고 나면 공원에 가서 마음을 정화하는 편이다. 자연이 좋다. EBS '숨은 한국 찾기'에 출연 중인데, 내 취향과 잘 맞는다. '구르미' 속 중전은 화를 품고 있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몸에 열이 남아 있는 느낌이다. 날씨가 꽤 쌀쌀해졌는데도 땀이 난다. 빨리 평범한 인간 한수연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차기작은 결정됐나.
"아직 들어온 제의는 없다. 어떤 작품이 차기작이 될지 궁금하다. 긴 시간 멈춰 있던 모터를 재가동시키려면 큰 힘이 필요하지 않나. 내 안의 연기 모터가 멈추기 전에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한동안 연애를 못해서인지 로맨스 연기를 해보고 끌리긴 하다. (웃음). "

-인터뷰를 통해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외증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출신이시다. 공주에서 의병대장을 하셨다. 최근 영화 '밀정'에 짧게나마 출연했는데, 뿌듯함이 더욱 컸다. 독립운동가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답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이런 자리에서라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아, '구르미'에 함께 출연한 방중현 선배님 이야기도 하고 싶다. SNS에서 화제가 된 배우들의 사진은 대부분 그 선배님께서 찍어주신 거다. 항상 유명한 배우들만 언급하게 되는데, 정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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