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에도 평창 개폐회식·성화봉송은 삼성∙롯데에?

"이미 내정됐다는 소문 파다" vs "조달청 통해 공정한 심사"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가장 곤욕을 치르는 기업이 삼성과 롯데그룹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화재를 통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169억 원을 출연한데 이어,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씨의 승마 독일 전지훈련에 35억 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압수 수색하고, 삼성 관련자들에 대해선 출국금지 조치했다.

롯데그룹은 두 재단에 45억 원을 출연한데 이어, 지난 5월말에 계열사 5~6곳을 통해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추가로 후원했다가 되돌려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들 그룹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출연하게 된 배경과 사업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두 그룹은 최순실씨 측근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 사업과 관련해 개폐회식과 성화봉송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선정 시점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후원한 직후인 올해 9월과 10월이다.

◇ 삼성계열 제일기획, 622억 규모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운영사'로 선정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지난 8월 10일 용평 그린피아 콘도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제작 및 운영용역'사업의 설명회를 가졌다.

이 용역 사업은 평창올림픽의 개폐회식 행사 연출과 제작, 운영에 관한 모든 제반 사항을 업체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사업비만 무려 622억 원에 달해 국내는 물론 외국업체들도 군침을 흘릴 만큼 관심이 집중됐던 사업이다.

하지만, 실제 사업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 컨소시엄과 롯데그룹 계열사인 대홍기획 컨소시엄 등 단 2개 업체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국내 굴지의 이벤트 업체 관계자는 "올림픽 개폐회식 용역업체 공모가 났을 당시 이미 이쪽 업계에서는 특정 업체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업체들 사이에서는 굳이 들러리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응모 자체를 포기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업설명회를 8월 10일에 하고 불과 한 달 뒤인 9월 13일까지 제안서를 접수하라고 하는 것은 이미 사전에 준비가 돼 있지 않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벤트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보통 용역사업의 경우 마진율이 20~30%로 보는 게 정설"이라며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사업비가 600억 원 규모를 감안하면 150억 원 안팎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처럼 다소 불합리한 공모과정을 거쳐 제안서 접수마감 9일 후인 지난 9월 22일 개폐회식 우선협상대상자로 제일기획을 선정한데 이어, 11월 1일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사업은 이보다 앞서 이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초 연출 감독으로 선임됐던 정구호씨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난 8월 자진사퇴하면서, 비선실세 차은택씨의 개입설과 총감독인 송승환씨와의 갈등설 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씨는 최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최소한의 예술성도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사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가 정식계약을 미뤄 약 7개월 동안 무보수로 일한 바 있다.

◇ 롯데 계열 대홍기획, 140억 원 규모 '성화 봉송'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지난 9월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페럴림픽대회 성화봉송' 사업의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역시, 동계올림픽의 성화봉송 행사와 관련한 연출과 제작, 운영에 관한 모든 제반 사항을 총괄하는 대행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용역설명회였다.

전체 사업비가 140억 원에 달하고, 별도의 제작물 비용까지 합하면 300억 규모의 짭짤한 사업이었기에 롯데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인 (주)대홍기획과 SK플래닛(주), (주)한컴, (주)KBS N 등 굵직한 업체들이 경쟁에 참여했다.

올림픽조직위원회는 10월 6일까지 제안서를 접수하고 곧바로 6일 후인 10월 12일 우선협상대상자로 대홍기획을 선정했다.

올림픽 개폐회식 용역업체 공모에서 제일기획과 경쟁을 벌이다 고배를 마셨던 대홍기획이 불과 한 달 뒤에 성화봉송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이벤트업계 관계자는 "대홍기획은 전문 광고업체로 140억 규모의 이벤트 행사를 추진할 사이즈가 아니었는데 최종 선정돼 업계사람들도 놀랬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홍기획이 개폐회식 사업에 제안서를 낸 게 9월 13일로 알고 있다"며 "성화봉송 제안서 최종 접수일이 10월 6일인 점을 감안하면 2개 사업을 동시에 준비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큰 업체들이 공모사업에 참여하면서 중소규모의 이벤트 전문 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리 사업공모가 날 것을 알고 이들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았다면 2개 사업을 동시에 준비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홍기획은 3개 중소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모사업에 참여했다.

◇ 평창올림픽 이벤트행사 공모, 왜 서둘러 진행했나?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용역사업과 성화봉송 용역사업의 공통점은 낙찰자 결정 기준이 '협상에 의한 계약'이라는 사실이다.

협상에 의한 계약은 이번처럼 주로 용역사업이나 물품 구매사업에 적용하는 국가계약의 한 방법으로, 심사위원들이 업체가 제출한 제안서와 프리젠테이션(PT)를 보고 낙찰자를 최종 선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 방식은 발주처가 마음만 먹으면 특정업체 밀어주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공정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공공기관이 발주한 용역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대학교수와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사법기관에 적발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이번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용역사업과 성화봉송 용역사업이 심사 과정에서 적정성에 의혹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최측근인 차은택씨와 최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평창올림픽 사업에 깊숙하게 개입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들이 개폐회식과 성화봉송 용역사업에도 개입했을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이벤트업체 관계자는 "제일기획과 대홍기획이 평창올림픽 용역사업을 수주한 시기가 삼성과 롯데그룹이 미르, K스포츠재단에 천문학적인 돈을 출연한 이후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직위 관계자는 "조달청을 통해 사업공모와 심사위원이 결정됐기 때문에, 조직위가 관여할 사안이 없었다"며 "다만, 응모한 업체의 인력과 회사신용 상태 등 정량평가 부분에 대해선 조직위가 심사해 조달청에 넘겼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폐회식과 성화봉송 이벤트 사업과 관련해선 심사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그렇지만, 관련 예산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 사업 추진에 변화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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