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한미FTA는 일자리 킬러", 힐러리도 "조건부 자유무역"
일단 미국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완전히 끄지 못했다. 경기가 많이 살아났다고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발생한 금융위기의 여파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의 쇠락한 공업지대, 이른바 ‘러스트 벨트’ 지역은 주요 산업이 침체일로를 걸으면서 실업자가 넘쳐난다.
이들 지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며 중산층을 이뤘다가 지금은 경제적 지위가 추락해버린 백인 노동자들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기반이기도 하다. 때문에 트럼프는 강력한 자국 산업보호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며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매서운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한미FTA다. 트럼프는 한미FTA를 가리켜 “일자리 킬러”라고 지칭하며, 자신이 당선되면 한미FTA부터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미 수출규모가 전체 2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다.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만큼 과격하지는 않지만, 선거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러스트 벨트의 원성을 모른 척만 할 수 없다. 때문에 클린턴도 트럼프에 맞서 “일자리를 없애거나 임금을 줄이는 무역협정은 중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국무장관으로 있을 당시 추진됐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중단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나선 상태다.
어느 누가되든 GDP의 절반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전북대 무역학과 최남석 교수는 “선거 공약이 고스란히 지켜질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단기간에는 미국의 통상 정책이 보호무역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는 한미FTA 재협상을 비롯한 매우 급진적인 정책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 수출, 일자리 손실 예상되는데...혼돈의 정부 경제팀
최 교수가 한국경제연구원의 의뢰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고 그의 공약대로 한미FTA 재협상으로 인한 양허정지가 이뤄지면, 우리는 향후 5년간 269억달러의 수출손실과 24만개의 일자리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자동차와 기계 산업에서 큰 손실이 예상됐다.
아울러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 보복적인 무역전쟁의 양상이 나타나, 2020년까지 미국의 경기가 후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안전자산의 선호현상 등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에 브렉시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면, 큰 혼란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악재가 예상된다. 최남석 교수는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미국의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부과가 확대되면서, 2021년까지 우리나라의 수출이 119억달러 감소하고, 일자리도 9만2천여개가 없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 되더라도 부정적 여파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우리 경제팀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마비되면서, 경제 컨트롤타워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정국 타개를 위해 새로 임종룡 경제부총리를 내정했지만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지 않으면서, 유일호 현 경제부총리가 어정쩡하게 경제정책을 이끌어가는, ‘사공이 두 명’인 웃지못할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당장에 미국 대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어야 하는데 회의에 힘이 실릴지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생산, 수출, 소비, 투자, 고용까지 모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최순실 게이트라는 내부 악재와 미국 대선이라는 외부 악재까지 대한민국 경제는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이다. 극도로 불확실한 경제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경제호는 누구도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불안한 표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