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 또는 탄핵 주장과, 내년 12월까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자는 주장 간의 절충안 쯤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5%까지 떨어지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하야 및 탄핵여론이 절반을 넘어섰지만 적어도 제도권 정치인들은 일단 그 가능성과 선을 긋고 있다.
물론 하야나 탄핵이 흔히 알려진 것처럼 ‘헌정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 이후로는 전례가 없던 일이어서 ‘지도에 없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
◇ 대통령 사임해도 만만찮은 숙제 산적…차기 정부도 부담
특히 탄핵의 경우 재적 국회의원 2/3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현실성이 높지 않을뿐더러 과거 노무현 대통령 때의 경험처럼 자칫 감당 못할 역풍에 무너질 수 있다.
설령 하야나 탄핵을 통해 대통령이 사임하더라도 풀어야 할 문제와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먼저, 사임 후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는 규정상 제대로 된 선거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전대미문의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질 검증이 대폭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점은 더욱 도드라진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정도 외에는 출마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현실론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입후보 하고자 하는 공무원의 경우 선거 90일 전까지 사퇴해야 하는 규정(공직선거법 53조)을 들어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남경필 경기지사 등 지자체장들의 참정권이 제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떠나 누가 당선되더라도 차기 정부는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불안한 출발을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6일 페이스북 글에서 “선거일 밤에 당선자가 확정되는대로 5년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다. 인수위라는 경과기간도 없다”며 “지금은 감정적으로 즉각 하야가 만족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정권을 담임하는 쪽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과도정부로 1년여 끄는 것도 불안…합리적 절충 필요
이런 사정들 때문에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의미하는 거국중립내각(거국내각)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거국내각은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1차 사과 때만 해도 거의 금기시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여야의 공감대를 얻으며 현 사태를 풀어갈 최소한의 필수조건이 돼버렸다.
문제는 거국내각 역시 헌법상에 규정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성립 자체는 물론 운영 과정에서도 숱한 난관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주류 친박계는 야당이 요구하는 박 대통령의 탈당이나 2선 후퇴 등과 관련해 여전히 부정적이다.
최소한 외교와 국방 분야에 대한 권한은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의심받는 박 대통령의 통치능력을 감안할 때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야권은 내년 12월까지 1년 넘게 과도정부를 이어가는데 따른 가변성과 유동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말이 ‘2선 후퇴’이지 헌법상의 권한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중간에 어떤 변수와 계기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민병두 의원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등을 중심으로 조기 대선론이 제기되고 있다.
민 의원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다”면서 거국내각 구성 후 6개월 뒤 선거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물론 여당은 물론 야당 내에서도 조기 대선론에 대해서는 너무 앞서간 얘기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입장일 뿐 내부적으로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정국 상황을 염두에 두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내년 12월까지의 거국내각 과도정부가 성립된다 하더라도 실제 운영 과정에서 난맥상이 드러날 경우, 차라리 책임성을 가진 정부 출범을 앞당기자는 조기 등판여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