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발빠르게 4차 산업 혁명을 모색하고 미래먹거리 발굴에 한창인 와중에, 최소 5년은 뒤쳐졌다는 국내 ICT 업계가 '최순실 불똥'에 사실상 '마비' 사태에 빠지게 됐다.
◇ 통신비 인하 등 민생 사안 산적…사흘 뒤 미방위 법안소위, 최순실에 묻힐 우려도
먼저, 이달에는 가계통신비 인하 등 민생과 직결된 각종 통신 사안이 수두룩하다. 오는 10일부터 열리는 국회 미래창조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개정안 등 8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15개 등 통신 관련 법안이 발의·심사를 앞두고 있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들은 11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현재 미방위에는 ▲ 20% 요금할인률의 30% 상향을 비롯 ▲ 33만원으로 제한된 '지원금 상한 폐지', ▲ 이통사의 지원금과 제조사의 장려금을 분리하는 '분리공시제' 등이 발의된 상태다.
가계통신비 절감에 크게 기여할 통신비 부가세 면제를 골자로 하는 '부가가치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요금인가제 폐지' 알뜰폰(MVNO) 사업의 근간이 되는 망 도매제공 의무제도 3년 연장 법안 등도 논의될 예정이다.
이처럼 민생 현안들이 산적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국정마비 사태를 불러일으키면서 통신 관련 국회 일정이 모두 연기되는 등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홍근 의원이 공동 개최 예정이었던 기본료 폐지 등 가계통신비 인하 관련 포럼과 신상진 새누리당 의원의 단말기유통법 관련 포럼은 각각 잠정 연기됐다.
또 법안 소위가 당장 코앞에 다가왔지만 발의된 법안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묻히거나, 심도 깊은 논의 없이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모든 관심이 대통령과 비선실세 이슈로 몰린 마당에 통신 관련 법안에 과연 얼마나 깊고 상세한 논의가 오고갈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 창조경제 직격탄, 4차 혁명 VR 등 미래먹거리 사업 좌초 위기
박근혜 정부의 중점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 1호 모델인 창조경제타운의 청사진이 미리 최순실 씨에게 전달되고 그 측근들이 창조경제 사업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정책 추진 동력이 사실상 상실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소 300만원에서 최대 121억원의 대기업 기부금으로 설립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둘러싼 의심의 눈초리도 미래부에 큰 부담이다. 또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된 펀드가 1조 7000억원 규모로 조성됐는데 이 중 7000억원도 대기업 출자였다.
전국 17개 민·관합동 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작업을 맡은 업체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관련된 것도 국정농단의 흔적이 엿보인다. 차 씨가 '초고속 절차'를 거쳐 지난해 4월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임명된 경위마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미래부는 이같은 추측성 의혹에 창업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청년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창업 지원 정책 등에 악영향이 끼칠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와 함께 출범한 미래부가 다음 정부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과학, 산업 등으로 쪼개지면서 사실상 공중분해 될 것이라는 추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미래부 및 산하 공무원들의 의욕 저하로도 이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은 VR, 인공지능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선정하고 지난해부터 과감한 연구 개발과 투자 등을 감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VR산업을 9대 성장동력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하고 4050억 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나 차 전 단장을 비롯,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이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VR 사업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더욱이 한국VR콘텐츠협회장인 마해왕씨도 최순실씨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당 사업은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최순실 블랙홀에 따른 손실은 애먼 기업들에 떠넘겨질 전망이다. 국내 등록된 VR 콘텐츠 기업은 400여 곳. 스타트업 등을 포함하면 1000여 곳에 이른다.
◇ SKT-CJ헬로비전 합병 무산에도 최순실 개입?…한국마사회, 차은택과 연루된 KT
'최순실 불똥'은 기업에도 튀었다. 약 9개월간의 지리한 논의 끝에 결국 '무산'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발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무산이 결정된 뒤 4개월 만이다.
올해 초 최순실 씨가 SK그룹에 80억원의 재단 출연금을 요구했지만 SK그룹이 이를 거절한 순간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대한 정부 심사 기류가 갑자기 부정적으로 돌아섰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SK그룹의 거절 시점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심사 기간과 맞아 떨어지면서 석연치 않던 의혹을 증폭시킨 셈이다.
KT도 '최순실 게이트'에 자유롭지 못하다. 최 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더블루케이'의 동원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더블루케이 전 대표인 조모 씨는 지난 3월부터 KT와 문자와 통화를 주고 받으며 연구용역 사업을 논의했다. 실제 조 씨는 3월 11일 KT경영연구소장을 만난 것도 확인됐다.
최순실 게이트는 KT에 차 전 단장과 안종범 전 수석과 절친인 이동수 전무(IMC본부장)에게까지 흘러갔다. 차 전 단장의 회사 아프리카픽쳐스에 KT가 광고를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KT는 "더블루케이 조 씨가 먼저 KT에 용역보고서를 만들어보겠다"며 제안했고, 그래서 만났던 것"이라면서 "하지만 검토해보니 KT 방향과는 맞지 않는데다 내용도 부실해 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또 "차 전 단장이 있는 아프리카픽처스는 KT 광고 6건의 제작에만 참여했고 업계 관행에 따라 KT는 광고대행사와 직접 계약을 맺을 뿐 제작 및 연출의 선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KT가 미르 K스포츠 재단에 기부금을 낸 것도 다른 기업들과 달리 공식적으로 이사회를 열어서 냈고, 황 회장이 현 회장을 만난 것은 KT가 해당 사업에 수백억원을 수주한 만큼 당연히 회장이 참석할 자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은 쉽게 가시지 않으면서,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