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거국내각은 헌법상의 근거가 없는 것이어서 개념 자체가 뚜렷하지 않다. 노태우 정권 말기 때인 1992년 대선 관리를 위해 두 달 짜리 거국내각을 운영한 적은 있지만 지금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그야 말로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보니 여야 간에는 물론 야권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핵심 쟁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권한 축소 필요성엔 여야 모두 이견이 없지만 그 범위를 놓고는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
야당과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탈당하고 대부분의 권한을 이양해 상징적 존재로만 남을 것을 주장하지만 청와대와 주류 친박계는 “그것은 하야 요구나 마찬가지”라며 극력 반발하고 있다.
주류 친박계는 책임총리제에서 거국내각 수용으로 한 발 후퇴하는 모양새를 취하긴 했지만 실제 내용 면에선 박 대통령의 권한이 상당 부분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가리거나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로 보고 수용 불가를 외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당시 “야당이 먼저 제안한 거국내각을 여당이 수용하자마자 걷어차 버리면 어쩌자는 거냐”고 발끈했고 야당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받아쳤다.
야당 입장에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거국내각을 제안한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다소 허를 찔린 측면이 적지 않다.
물론 문 전 대표의 제안과 새누리당의 안은 내용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거국내각의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사정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야당은 거국내각 자체를 당분간 거론하지 않는 게 새누리당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고 ‘선 진상규명 후 거국내각’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최순실 일가의 비위사실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청와대와 친박계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야당이 먼저 거국내각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씨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져 죄상이 낱낱이 공개되는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만약 부실 수사로 끝난다 하더라도 ‘촛불 민심’의 더 큰 역풍을 만날 수밖에 없다.
야당 내부에선 “정권 실패 세력과 거국내각을 구성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최소한 최순실 사태 관련자들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지난달 27일 21.2%(리얼미터)에 이어 28일 17%(갤럽) 1일에는 9.2%(디오피니언)로 급전직하 하고 ‘대통령 하야’ 찬성 의견은 70%에 육박하는 여론도 참고점으로 작용한다.
우여곡절 끝에 거국내각이 성사될 경우에도 초유의 정치실험이 순항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다.
내각의 여야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 부터가 불확실성의 연속인데다, 단일 정치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 결정 때마다 세력 간의 갈등과 충돌이 반복될 수 있다.
설령 대통령이 2선 후퇴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군통수권 등 헌법상의 핵심 권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극적인 상황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거국내각은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의 과도정부라는 점에서 1년 이상 유지하는 것은 정국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 경제와 안보의 이중위기를 장기간의 임시체제로 극복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사실상 통치 불능의 대통령을 위해 거국내각을 세우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차라리 조기 대통령선거를 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1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1년 4개월짜리 거국중립내각이 들어선다면 이것이 과연 혼란 없이 제대로 돌아가겠느냐는 점에서 대단히 의문”이라며 대선 일정을 앞당길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