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KBS본부)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일찍이 싹을 알아보지 못하고 낙종하는 데 보도책임자로서 일조를 했느냐는 데에 할 말이 없다"며 "경과가 어떻든 어떤 이유를 대든 보도책임자로서 제 책임"이라고 밝혔다.
KBS본부는 김인영 보도본부장의 사퇴 이행과 함께 정지환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에게도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KBS본부는 "사실 이번 보도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은 통합뉴스룸 국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라며 처음부터 취재 건의조차 묵살한 장본인"이라며 "보도본부장조차 책임을 느끼고 사퇴할 뜻을 밝혔는데, 국장이 '자리'에 연연하며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뻔뻔함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회사 차원에서 '최순실 국정 농락'과 관련한 특집 다큐와 토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편성할 것 △뉴스 편집에 취재·제작 실무자 의견을 적어도 1~2건은 의무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에 동의하고 시행할 것 △노사 공방위에서 의견 대립으로 결론 맺지 못한 안건을 조정하고 대책 마련하도록 하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 기구'를 노사 합의로 설립할 것 3가지를 요구했다.
KBS본부는 앞서 28일에도 성명을 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적극 보도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박근혜 잠적 최순실 연루설 △집회 시위, 시국 선언 등 국민적 분노 충실한 전달 △박근혜 최태민 최순실 과거 자료 화면 발굴 보도 △개성공단 폐쇄, 통일 대박론, 탈북 권유 등 대북 정책 최순실 농단 의혹 △위안부합의 등 외교 개입 및 농단 의혹 △재벌, 고위공직자 친인척과 최순실 연루 '8선녀’설 △사드 배치, 차세대 전투기 등 대규모 국방사업 최순실 개입 의혹 등 7대 과제를 중점적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는 지난 9월 20일 한겨레가 처음으로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이름을 거론한 이후 한 달 여 간 관련 보도 요구를 외면해 오다가 지난달 25일에야 뒤늦게 전담 TF를 발족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여전히 타 언론사의 단독보도를 뒤쫓고 있는 상황이지만, 보도본부장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퇴 의사를 밝힌 만큼 향후 보도 방향이 보다 공세적으로 바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KBS 측은 "노사 공방위에서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최순실 국정 개입 의혹 보도와 관련해 지금은 책임을 따지기보다는 취재 경쟁에 매진하기 위해 구성원이 힘을 모아 단합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또 보도본부 수장으로서 책임을 가장 크게 느낀다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며 "그럼에도 KBS본부가 전체 맥락을 보지 않고 사퇴에만 초점을 맞춰 성명서를 낸 것은 진의를 크게 왜곡시킨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 "한 달 동안 최순실의 '최' 자도 못 꺼냈다… 그게 오늘의 결과"
정수영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KBS는 10월 5일부터 보도 태도가 바뀐 20일가지 리포트 7건, 단신 1건만을 보도했다. 그간 KBS가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를) 얼마나 외면해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기간 JTBC는 65건, TV조선조차도 26건으로 각각 5배, 4배가 넘는다"며 "대통령 하야 요구까지 나오는 중대한 시점에서 과연 언론으로서, 공영방송으로서 수신료 2500원어치 값했다고 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성재호 본부장은 "지금부터 우리 KBS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뉴스를 국민이 원하는지,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을 챙겨서 보도해야 한다. KBS를 비롯한 일부 거대 언론사들은 검찰발 정보를 갖고 보도를 쏟아낼 것이다. 혹여나 물타기나 관심을 돌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사실상 이번이 우리 시청자가, 국민이 주는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 이 마지막 기회, 반드시 살려서 정말 제대로 된 KBS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싸웁시다"라고 말을 맺었다.
KBS기자협회 이영섭 협회장은 "(한겨레의 첫 보도가 나갔던) 9월 20일 금요일 아침 편집회의에 들어갔을 때 최순실 보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보도책임자들이) 뭐라고 했는지 들으셨죠"라며 "10월 20일부터 갑자기 최순실 보도를 열심히 하더라. 기자협회의 문제제기 이후 한 달이 걸린 것이다. 한 달 동안 어느 부장도, 어느 주간도 최순실의 '최' 자도 못 꺼냈다. 그게 오늘의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영섭 협회장은 "(연간) 수신료 6000억원을 받으면서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 하야 요구가 나오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뉴스서비스를,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있나.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다"며 "시청료가 아깝지 않으려면 제대로 탐사보도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더 이상 쪽팔리지 맙시다"
MBC 출신인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10월 29일 청계광장 집회에서 제가 놀랐던 건 최근 모인 집회 중 가장 많은 젊은이들을 봤다는 것"이라며 "그날 우리(MBC)로선 참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다. MBC 기자가 현장 리포트를 하려다가 '그동안 뭐했느냐' 하는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 때문에 물러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건 비단 MBC와 MBC 기자에게만 하는 시민들의 항의와 비난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언론 모두, 특히 공영방송과 지상파 방송 모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며 "KBS 동지 여러분들, 굴복하지 말라. 끝까지 저항하고 시민과 진실의 편에 서서 함께 싸우자"고 독려했다.
언론노조 SBS본부 윤창현 본부장은 "오늘 이 자리가 공영방송을 정상화시키고 나라를 나라꼴답게 만드는 언론의 역할을 다짐하는 그런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SBS도 길바닥 나가면 X방새라고 욕 엄청 먹었다. KBS는 김비서… 비서 노릇 계속 하실 건가. 정신차리셔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 본부장은 "그동안 KBS, MBC에 대한 정치권력의 직접적인 개입이 논란이 돼 왔지만, 그 방식이 정교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SBS에 과연 그런 일이 없었겠느냐 하고 의심하는 건 대단히 합리적 추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K가 큰형님이지 않나. 큰형님이 좀 나서달라. SBS, MBC도 다른 방송사 노동자들과 같이 어깨 걸고 발 맞춰 싸워나갈 것이다. 더 이상 쪽팔리지 맙시다. 같이 언론의 새 장을 열어갈 수 있도록 저희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오늘(1일)부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 총파업 등을 비롯한 보다 심층적인 투쟁을 준비할 예정이다. 오는 1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에 참여하고, 고대영 사장의 신임을 묻는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