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국 내각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최초 제안한 사안이라는 측면에서 여당 지도부의 결정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돌파하는데 있어 야권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선 내정에 관한 권한을 대폭 내려놓고 임기를 보내라는 요구여서 결정이 쉽지 않다. 야권 역시 최순실 게이트에서 불거진 사태 수습에 동참하는 데 대해 반대하는 쪽이 다수여서 실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여권의 숨은 의도는 겉으로 거국 내각을 명분으로 내걸고, 박 대통령이 이미 제안한 '개헌'을 고리로 내각제 입장의 야권 일각을 포섭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 與 '지도부 총사퇴’ 대신 ‘거국내각’ 수용
정진석 원내대표는 30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거국 내각 수용 배경에 대해 “결정은 (당이 아닌)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며 “당 최고위에서 의견을 모아서 (박 대통령에게)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국민들께서 납득하실 수 있는 그런 인적쇄신 결과가 돼야 한다는 인식 하에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비서관 3인방’ 퇴진과 더불어 황교안 국무총리까지 여야 합의가 되는 인물로 교체하자는 '청와대발(發) 인적쇄신론'의 연장선이란 설명이다.
여권에서는 당초 문 전 대표가 ‘거국 내각’ 카드를 제시했을 당시부터 “막상 우리가 수용하면 당황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여권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국회의 논의 구조로는 총리든 장관이든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느냐. 거국 내각 카드는 진실 규명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일축했다.
지도부의 거국 내각 수용이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탈당 요구 등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野 입장 바꿔 일축…"처음부터 부적절했던 제안"
이 같은 입장은 최순실씨의 전격 귀국 등 상황이 급변했다고는 해도 당초 입장을 뒤집은 결과다.
민주당의 경우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 전 대표가 거국 내각의 최초 제안자이고,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 28일 "중립적 거국 내각을 검토할 때"라고 했었다.
때문에 당초 섣불리 제안한 것부터가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야권 고위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거국 내각 얘기를 할 때부터 반대했었다"며 "박 대통령 밑에서 장관하라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 ‘통합형 총리’ 카드 남아…'김종인‧손학규·김병준' 거론
한 최고위원은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총리는 이제 불가능해진 것 아니냐”라며 “거국 내각 제안과 함께 누가 통합형 총리로 적합한지에 대해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김종인 민주당 전 대표와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이 후보로 천거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표의 경우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 캠프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성안했던 만큼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전례가 있고, 손 전 고문도 여권에서 야권으로 넘어간 인사다.
김 전 대표 측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전권을 내려놓는 것을 전제로 한 총리 제안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여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은 총리 후보로 거론된다는 지적에 대해 "알거나 들은 바 없어서 입장을 밝힐 것이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 정부 인사이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병준 국민대 교수도 총리 후보로 함께 거명된다. 김 교수는 거국 내각 제안에 대해 "개헌 전 이원집정부제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책임 총리로 발탁될 경우 이들의 ‘내각제’ 혹은 '내각제 요소가 강한 분권형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 개편 방향과 박 대통령의 ‘개헌’ 요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개헌론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