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비노 철학소설 '팔로마르'

존재의 본질, 우주와 시간에 대한 깊은 사색

이탈로 칼비노의 대표적 후기 작품 '팔로마르'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 마지막 권으로 선보인다.


칼비노는 한 글쓰기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그것은 ‘모홀’이라는 인물과 ‘팔로마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철학 작품으로, 팔로마르는 유명한 천문대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팔로마 산에서, 모홀은 지각에 구멍을 뚫으려는 프로젝트에서 이름을 따왔다. 팔로마르는 위쪽, 외부, 우주의 다채로운 측면을 지향하고, 모홀은 아래쪽, 어두운 것, 불쾌한 것, 내면의 심연을 지향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글쓰기를 지속하면서 모홀적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진 칼비노는 ‘팔로마르’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팔로마르가 바로 모홀이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다.
1부에서 팔로마르는 휴가를 떠난다. 해변에 누워 파도와 하늘을 바라보면서, 잔디밭의 잔디들을 바라보면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인간 세계와 우주적 시간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시작한다. 그의 독특한 사고와 의문들은 도시로 돌아온 2부에서 계속된다. 쇼핑을 하러 가서, 동물원에 놀러 가서, 거리의 지저분한 비둘기를 바라보면서, 팔로마르는 그 행위와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곱씹는다. 이런저런 고찰 끝에 3부에 가서 팔로마르의 머릿속은 사회와 문화, 우주에 대한 의문과 함께 ‘침묵하는 시간’에 들어가면서 결국은 ‘죽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인간 세계와 우주적 현상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철학 소설

작품에서 드러나는 팔로마르는 내성적이고 혼자 사색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소통 방식과 그 문제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자기 혀를 깨물기」에서는 침묵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말과 침묵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해 성찰한다. 또한 세대 사이에 본질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언어를 통한 소통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상상하며, 지빠귀의 휘파람 소리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면서 새와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특정한 주제에 깊이 파고드는 그의 사색은 새로운 인식이나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식이나 일반적 인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뒤집기를 겨냥한다. 그는 별자리를 찾으면서 동시에 우주와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정육점에서는 미각의 유혹과 함께 각종 육류를 바라보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역설적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을 합리적 이성과 논리에 따라 파악하려는 현대인들의 관념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팔로마르'는 대개 소설로 분류되지만 전통적인 소설 양식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주인공도 있고, 행위나 사건도 있고, 상황의 반전도 있지만, 소설보다 오히려 수필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 사실을 의식한 듯이 칼비노는 작품의 집필 배경과 구성, 의도 등에 대한 ‘소개’ 외에, 차례 앞에다 세 가지로 분류된 주제와 대화, 사색의 유형과 방식 등에 대해 짤막한 메모 형식의 글을 덧붙이고 있다.
구성이나 전개 방식에 있어서도 칼비노의 실험성이 돋보인다. 텍스트는 모두 스물일곱 편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각 부분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뉘며, 그 각각이 세 편의 글로 구성된다. 도식적으로 보면 3×3×3 형식이다. 각각의 글은 몇 페이지 되지 않은 짧은 분량이지만, 상당히 압축적이며 곧바로 주제의 본질 속으로 파고들면서 독특한 사색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만큼 그 안에 담겨 있는 다채로운 뉘앙스와 함축 의미들을 골고루 맛보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팔로마르의 관찰과 사색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지침을 제공한다. 마치 삶과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라고 권유하는 듯하다. 요즘처럼 힘든 세상일수록 팔로마르처럼 색다른 시선으로 우리 주변을 차분히 되돌아보며 세상의 존재 이유와 변화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어떨까.

책 속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잔디밭’인가, 아니면 풀 하나 더하기 풀 하나 더하기 풀 하나…… 같은 것인가? 우리가 “잔디밭을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개략적이고 조잡한 우리 감각의 효과일 뿐이다. 하나의 집합은 구별되는 요소들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만 존재한다. 그것들을 헤아릴 필요는 없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단 한 번의 눈길로 그 작은 개별 식물들 하나하나를 고유한 특수성과 차이와 함께 포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45쪽)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이나 판단을 선언하는 데 몰두하는 시대와 나라에서 사는 동안 팔로마르는 어떤 주장을 하기 전에 자기 혀를 세 번 깨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만약 혀를 세 번째 깨물 때까지 자신이 하려던 말에 대해 확신한다면 그때 말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침묵한다. 실제로 침묵 속에서 몇 주 또는 몇 달이 지나가기도 한다.(111쪽)

간단히 말해 죽은 사람이 되기는 예상보다 어려웠다. 먼저 죽은 사람이 되기와 존재하지 않기를 혼동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탄생 이전에 무한히 펼쳐진 시간, 분명히 죽음 이후에 마찬가지로 무한히 펼쳐진 시간과 대칭적인 시간까지 차지하는 조건이다. 실제로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실현될 수 있거나 또는 실현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들의 일부인데, 반면 일단 죽고 나면 우리는 과거 안에서도 실현될 수 없고(이제 우리는 완전히 과거에 속하지만 그 과거에 더 이상 영향을 줄 수 없다.) 미래 안에서도 실현될 수 없다.(비록 우리의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미래는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다.) (127쪽)

이탈로 칼비노 지음 | 김운찬 옮김 | 민음사 | 144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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