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KS) 첫 경기에서는 일단 두산의 손을 들어줬다. 두산은 29일 잠실에서 열린 NC와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KS 1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1-0 신승을 거뒀다. 오재일의 KS 사상 첫 끝내기 희생타로 11회말에 웃었다.
신승(辛勝)이 아니라 신승(神勝)이었다.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거두지 못했을 승리였다. 처음에는 곰 군단에 등을 돌렸던 우주의 기운이 막판 기적처럼 돌아왔다.
그러나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NC도 충분히 기회를 얻었지만 굴러온 복을 스스로 걷어차면서 씁쓸한 패배를 안아야 했다. NC로서는 예상 외의 흐름에 승리를 따내는 듯했지만 애꿎게 필승조를 소모하며 전력에 적잖은 타격이 왔다. 충격패의 후유증은 심각할 수 있다.
▲두산, 쉽게 이길 경기를 이렇게 어렵게…
사실 이날 1차전은 두산이 나름 쉽게 이겼어야 했던 경기였다.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태산처럼 버티고 있었고, 타자들은 부지런히 출루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점수가 도무지 나질 않았다.
정규리그 이후 꼭 3주 만의 실전이 낯선 듯 두산 선수단은 다소 감각이 떨어졌다. 선수는 물론 코치들까지 기민한 평소 모습과는 살짝 달랐다. 정상적이라면 중반까지 2~3점은 뽑았을 경기였다.
1회 오재원의 병살타는 애교였다. 3회 두산은 선두 타자 허경민의 안타와 돌발 상황으로 절호의 기회를 잡는 듯했다. 김재호의 희생번트가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던 NC 2루수 박민우가 1루심과 충돌해 쓰러지면서 안타가 된 것. 무주공산인 1루에 NC 선발 재크 스튜어트는 송구할 수 없었다.
두산은 무사 1, 2루가 돼야 할 황금 기회가 1사 1루로 둔갑한 셈이었다. NC로서는 생뚱맞게 베이스 커버 동선에 서 있던 1루심이 원망스러울 수 있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5회와 8회는 두산 주장 김재호가 묘하게 아웃됐다. 5회 1사에서 김재호는 타임에도 투구한 스튜어트의 공을 때려내 좌전 안타를 만들었다. 그러나 주심의 타임 인정으로 무효가 됐고 결국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후 두산은 연속 안타가 나왔다. 김재호는 8회 2사 만루에서는 애매한 체크 스윙에 땅볼로 물러났다.
▲NC, 호수비로 가져온 기운을 이렇게 허무하게…
이 정도면 우주의 기운은 NC 쪽으로 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군다나 NC는 엄청난 호수비로 스스로를 도우며 하늘의 도움을 얻을 기회를 만들었다.
NC는 5회 김재호의 헛심 안타와 삼진 이후 박건우, 오재원의 연속 안타를 맞고 2사 1, 3루에 몰렸다. 두산 타자는 컨디션이 좋아 3번으로 전진 배치된 오재일이었다. 과연 오재일은 스튜어트의 3구째를 받아쳐 우전 안타성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외야 잔디 쪽까지 이동해 있던 2루수 박민우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민우는 빠져나가는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내 우익수 나성범에게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올 가을 김경문 감독의 미소를 자아내는 박민우의 날랜 수비였다.
하지만 NC는 도우려는 하늘의 손길을 밀어냈다. 9회 박민우는 선두 타자로 나와 우중간 안타를 때렸다. 결승점을 뽑을 기회였지만 박민우는 무리하게 2루까지 뛰다 횡사했다. 나성범은 연장 11회 1사 1, 2루에서 유격수 병살타를 때려내며 고개를 떨궜다. 상대 점수를 막아준 박민우와 나성범이었기에 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10회는 LG와 플레이오프(PO)의 히어로 김성욱이 믿음을 저버렸다. PO 4차전에서 결정적인 2점 홈런을 날린 김성욱은 김경문 감독의 신뢰 속에 KS 1차전에 나섰다. 1사 3루, 또 한번 기회도 왔다. 그러나 김성욱의 땅볼 타구는 하필 3루수 정면으로 향해 귀루하던 3루 주자 김종호가 거의 자연 태그로 아웃됐다.
▲우주의 기운이 깃든 뜬공 3개가 이렇게 중요하게…
NC가 잇따라 마다하자 우주의 기운도 더는 기다릴 수 없었는지 등을 돌렸다. 처음에는 외면했던 두산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연장 11회말 두산은 이번에도 선두타자 허경민이 안타로 출루했다. 당연히 다음 타자 김재호는 희생번트를 준비했다. 그러나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김재호는 돌연 강공을 택했다. 상대 1, 3루수의 전진 수비에 압박을 느껴 냅다 방망이를 휘두른 것. 그러나 공은 힘없이 중견수 쪽으로 향해 김재호는 최악의 하루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우주의 기운은 김재호를 구했다. 하늘은 날을 어둡게 해 조명탑을 켜게 만들었다. 하필 김재호의 뜬공이 라이트에 들어가면서 NC 중견수 김성욱은 낙구 지점을 잃었다. 1사 1루가 무사 1, 2루로 둔갑하는 행운이 따랐다. 10회의 범타에 11회말 결정적 실수까지 김성욱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NC는 오재원을 거르고 만루 작전을 택했지만 이미 기운은 빠져나간 뒤였다. 두산은 이날 5타수 무안타에 그친 오재일이 NC가 원했던 내야 땅볼 대신 외야 뜬공을 때려냈다. 아무리 허경민이 저돌적인 주루를 한다 해도 NC 우익수 나성범은 투수 출신의 최고 강견. 여기에 타구가 깊지 않았다.
그러나 나성범 역시 11회 병살타의 기억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것일까. 홈에서 접전이 예상됐지만 나성범의 송구 줄기는 평소보다 약했다. 레이저, 혹은 강한 원바운드가 아닌 힘없이 투바운드가 되면서 허경민이 육안으로도 빨랐다. KS 사상 첫 끝내기 희생타로 승부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땅볼과 뜬공, 이것이 운명적 차이였다
이렇게 KS 1차전에서 우주의 기운은 왔다 갔다 했다. 하늘의 변심이 두산으로선 반가웠고, NC에게는 잔인했다.
올 가을 이런 기묘한 경기가 낯설지는 않다. 지난 24일 NC는 LG와 PO 3차전에서 이런 야구를 한번 겪었다. 잔루가 33개(LG 19개, NC 14개), 사사구 25개(LG 9개, NC 16개)가 쏟아진 끝에 LG가 2-1로 이긴 경기였다.
당시도 NC는 나성범과 김준완의 슈퍼 캐치로 기사회생했지만 끝내 승리를 거두진 못했다. NC 역시 LG 못지 않게 응집력 빈곤을 드러내 서로 아까운 투수전을 펼쳐야 했다.
두산과 NC 모두 어이없는 주루 미스가 있었고, 결승점을 뽑을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NC는 연장 10회 1사 3루와 11회 1사 1, 2루에서 내야 땅볼이 나왔고, 두산은 11회말 1사 만루에서 외야 뜬공을 쳐냈다. 이것이 두산과 NC의 차이였다.
김태형 감독은 1차전 뒤 "김재호의 강공 때 운이 왔고, 박건우 때도 운이 좋았다"고 했다. 과연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기묘한 야구를 만들고 있는 우주의 기운은 이제 어느 쪽으로 향할까.
다만 NC는 LG와 4차전에서 NC는 8-3 승리를 거두고 후유증을 극복한 바 있다. 올해 가을야구에서 우주의 기운은 변덕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