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빈은 지난해 삼성과 KS에서 이른바 '미친 선수'였다. 5경기 타율 5할7푼1리(14타수 8안타) 1홈런 5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특히 5차전에서 7회 통렬한 3점 홈런으로 우승의 축포를 쐈다. 야구 기자단 투표에서 정수빈은 66표 중 41표를 얻어 동기 허경민(13표)을 제치고 KS MVP에 등극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올해 KS에서 MVP 정수빈의 자리는 없다. 2014년 타율 3할6리에 이어 지난해도 2할9푼5리에 커리어 하이인 145안타를 때려냈던 정수빈은 올해 거짓말처럼 깊은 부진에 빠졌다. 타율 2할4푼2리는 2012년(2할3푼5리) 다음으로 낮았다.
이런 가운데 정수빈은 올해 야구에 눈을 뜬 거포 김재환(28), 입단 동기 박건우(26)와 외야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김재환은 올해 두산 토종 최다 홈런(37개)과 역대 팀 최다 득점(107개), 124타점을 쓸어담았다. 올해 주전을 꿰찬 박건우는 타율 3할3푼5리 20홈런 83타점 95득점으로 김현수(볼티모어)의 공백을 메웠다.
정수빈은 KS 명단에 포함됐지만 주전은 아니다. MVP에서 1년 만에 벤치 멤버로 밀린 처지, 그러나 정수빈의 얼굴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한 시즌 내내 했을 마음고생을 털쳐내고 기꺼운 마음으로 가을야구를 보낼 심산이다.
타격감은 좋다. KS에 앞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서도 3루타를 날렸다. 김태형 감독은 "수빈이의 타격이 매서웠다"면서 "눈빛이 장난이 아닌데 마치 내가 보라는 것 같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본인도 "막판에야 감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아쉬움은 남지만 백의종군의 자세로 뛴다는 마음이다. 주역이 아니지만 팀 우승을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다. 정수빈은 "아무리 기록이 좋아도 팀이 지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2013년과 지난해 기억이 완전히 달라서 올해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고 말했다. 2013년 정수빈과 두산은 삼성과 KS에서 3승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주전 경쟁자였던 동기 박건우에게도 진심어린 조언을 해줬다. 정수빈은 "건우가 첫 가을야구 주전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더라"면서 "그래서 '내가 스타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즐기면 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팀 타격을 신경쓰다 망치기보다 내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는 정수빈의 군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이다. 12월8일 경찰야구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다. 정수빈은 "군대에 갈 때가 되니 마음이 편하다"면서 "가기 전에 한번 더 우승해서 홀가분하게 입대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입대 전 마지막 추억을 만들 계획도 이미 짜여져 있다. 바로 입단 동기들과 스카이다이빙이다. 정수빈은 "올해 KBO 미디어데이 때 오재원 형이 나와 건우, 경민이의 스카이다이빙을 우승 공약으로 걸었다"면서 "번지점프는 해봤는데 긴장되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왜소한 체격에도 빠른 발과 재치,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았던 정수빈. 누나들의 로망인 '잠실 아이돌'은 진짜 사나이가 되기 위한 과정을 앞두고 올해 가을, 아픔 속에 한뼘 더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