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를 마친 시민들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에 정국이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첫 주말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성난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면서 한때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으나 경찰 차벽에 가로막힌 뒤 특별한 충돌 없이 해산중이다.
29일 오후 6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시민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에는 시민 2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9000명)이 모였다. 당초 예상된 4000여 명 수준을 훨씬 웃돌았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오후 7시쯤 무대가 있는 청계광장(동아일보 사옥 앞)부터 청계천 모전교까지 200여m 거리 양쪽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집회 참가자가 가득 늘어섰다.
이날 주최 측이 준비한 촛불 2000여 개를 비롯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누던 촛불 수만개는 집회 시작부터 동이 났고 일부는 직접 가져온 LED 촛불을 손에 들었다.
시민들은 '박근혜 하야 최순실 구속', '순실의 시대', '순실민국이냐 사이비교주국이냐' 등이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에서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투쟁본부 최종진 공동대표는 "전국 각지에서 대통령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며 "우리는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파탄 낸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움직임을 오늘 시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이화여대 김승주 학생은 "학교에 공주가 다니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역대급 엄마빽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박근혜와 최순실의 꿈만 이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 말마따나 진정 개돼지였던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에서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정부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질 만큼 국민적 공분이 컸던 탓인지 평소 집회에 잘 참석하지 않던 시민이나 어린 학생들까지 모습을 보였다.
고등학생 이현태(19) 군은 "대통령이 연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시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며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오늘 시위에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대규모 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회사원 김미옥(26) 씨는 "뉴스를 보다가 너무 화가 나서 국민으로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생각했다"며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 집회 소식을 듣고 할로윈파티 약속도 취소하고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신당동에서 온 안은영(49)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집회에 못 나왔는데 그러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 같다"며 "대통령이 퇴진하고 내각이 총사퇴해야만 국정농단의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회사원 이용훈(28) 씨는 "민주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적법한 절차로 권력을 이양받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국가 권력을 사용해 국정을 농단하는 꼴을 참을 수 없었다"며 "이런 집회에 처음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는 스마트폰을 들고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중계를 하고 있었으며 굿을 하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태극기를 들고 나타난 이들도 눈에 띄었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또한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박주민 의원, 정의당 노회찬·이정미·김종대 의원, 무소속 김종훈 의원 등 야당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본집회가 끝난 뒤 행진을 시작했다. 이때까지 모인 인원은 5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만2천명)이다. 올해 최대 규모다.
이들은 당초 광교에서 종각, 종로2가를 거쳐 인사동 북인사마당까지 나아갈 계획이었으나 별안간 청와대 방향으로 진로를 틀었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하지만 세종로 광화문광장에 대기하고 있던 차벽과 경찰 기동대에 막혀 대부분 더 이상 진출하지 못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72개 중대 5000여 명을 동원했다.
경찰과 대치한 일부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방패를 빼앗으면서 한때 긴장감이 흘렀다. 미국대사관 앞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참가자 1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호 1주기 집회나 민중총궐기 등 지난해 있었던 대규모 집회와는 달리 조직적인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대오를 막아선 경찰을 향해 "비키라"고 외쳤지만 적극적으로 저지선을 뚫으려 하지 않았다. 경찰도 방송을 통해 "나라 걱정하는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달라"며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았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캡사이신이나 최루액 등도 사용되지 않았다. 물대포 살수차는 인근에 대기했으나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10시쯤 투쟁본부 측에서 행진 종료를 공식 선언한 뒤 11시 30분쯤 대부분 해산했다.
투쟁본부는 다음 달 5일 2차 주말 집회를 연 뒤, 12일 전국 500여 개 단체가 참여하는 민중총궐기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