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이' 판결 뒤집혀…'성매수녀' 오명 벗었다(종합)

장애 아동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법판단 전환 예고

하은(가명·당시 13세)이가 실종 당시 신었던 신발과 매일밤 끌어안고 자던 곰인형.
6세 지능의 지적장애아가 닷새 동안 6명의 남성에게 차례로 성폭력을 당하고도 잘못된 법원 판결로 성매수녀로 낙인찍혔지만 마침내 오명을 벗게 됐다.

CBS노컷뉴스의 연속보도로 억울한 사연이 알려진 뒤 상급심의 전향적인 판례가 나온 것으로 장애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법 판단의 일대 전환이 예고된다.


2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부(이인규 부장판사)는 지적장애아 '하은이(가명·당시 13세)' 측이 양모(25)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날 열린 선고 공판에서 양 씨에게 하은 모녀 측에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1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선고 이유에 대해서는 "원고(하은이)는 아동·청소년일 뿐만 아니라 지적상태 등에 비춰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곤란했다고 보인다"며 "피고(양 씨)는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해 성적 만족을 얻은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아동·청소년들은 아직 성적 가치관과 판단능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일 뿐만 아니라 육체적·사회적 약자로서 성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입장에 있다는 점 등을 아울러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하은이는 지난 2014년 채팅앱에서 만난 6명의 남성에게 잇달아 성관계 등을 당했다. (관련 기사 : CBS노컷뉴스 5월 12일자 지적장애 13세 하은이, '성매매女' 낙인찍힌 사연)

이번 판결의 피고 양 씨는 서울 송파구의 한 모텔로 하은이를 유인해 유사성교를 한 뒤 달아났다.

닷새 뒤 하은이는 인천의 한 공원에서 두 눈이 풀린 상태로 발견됐으며 이후 흉기로 자해를 시도하는 등 고통을 겪다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형사·민사재판부는 각각의 사건을 잇달아 성매매로 규정하면서 하은이는 법정에서 '자발적 성매수녀'로 낙인찍혔다.

아이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재워주실 분 구한다'는 채팅방을 개설했고 '숙박이라는 대가'를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하은이는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갖고 놀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화면을 깨뜨렸고, 혼이 날까 두려워 가출한 상태였다.

이 사건은 발생 2년 만에 CBS노컷뉴스 보도로 세간에 알려졌으며 당시 고영한(61) 법원행정처장이 국회에 나와 1심 판단의 문제를 인정하기도 했다.

판결을 지켜본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줘서 당연한 판결이 나왔다"며 "앞으로 같은 경험을 할지도 모를 수많은 피해자들의 걱정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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