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지연운행 안돼!"…시간에 쫓기는 기관사

지연운행 시 공기업 평가서 '감점'…성과급도 차등 지급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승객 한명이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출동한 과학수사대가 사고 당시 CCTV를 살펴보고 있다. 이한형기자
◇ 기관사는 왜 열차에서 내려 확인하지 않았을까?

지난 19일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오전 7시 15분쯤, 김포공항역에서 미처 하차하지 못한 A(36)씨는 기관사에게 전동차 내 비상인터폰으로 “출입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기관사는 전동차 출입문만 27초 동안 열었다. A씨는 승강장안전문(스크린도어)를 강제로 열려고 시도하다 전동차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꼈다.

스크린도어가 닫힌 뒤 센서는 작동을 멈췄다. 승객이 낀 사실을 몰랐던 기관사는 전동차를 그대로 출발시켰고 A씨는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기관사는 비상인터폰이 올 경우 전동차가 승강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즉시 정차한 뒤 확인해야 한다. 이는 기관사 내규가 규정한 내용이다.

당시 기관사가 실제로 열차에서 내려 정확히 확인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관사가 비상인터폰이 울릴 때마다 운전실에서 나와서 현장을 살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하철 5~8호선은 기관사 혼자 전동차 운행과 안전관리를 모두 책임지는 ‘1인승무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인시스템으로 운행되는 인천지하철 2호선
%7D◇ 아찔한 사고…시간에 쫓기는 기관사와 관제사

무인시스템으로 운행되는 인천지하철 2호선에서도 지난 8월 10일 오전 11시 31분쯤 독정역에서 2살 여아의 발이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으로 빠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광경을 본 승객들이 스크린도어와 출입문을 직접 몸으로 막았다. 이어 열차 안전요원도 비상정차스위치를 눌러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아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현장에 안전요원과 기민하게 대처했던 승객들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열차는 12분 정도 지연돼 다음 역인 검암역에 11시 45분쯤 도착했다.

이번에는 승객들이 승하차를 마치고 스크린도어까지 닫혔지만, 출입문이 닫히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직원이 출입문을 닫기 위해 조치를 하는 도중 갑자기 열차가 출발한 것이다.

이 직원은 "문이 닫히지도 않았는데 열차를 출발시키면 어떻게 하느냐"며 무전기로 관제실에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무인열차를 운행하는 관제실의 입장에서는 ‘열차 지연’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인명피해 없어도 지연운행 시 공기업 평가 '감점 요인'

더구나 ‘지연운행’은 지방공기업 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되는 중요한 지표이다.

행정자치부와 지방공기업평가원이 지난 3월 발간한 ‘지방공기업 경영평가편람’을 보면, 평가에 적용되는 ‘지연운행’은 인명사고나 물적 피해가 없더라도 스크린도어 등의 고장으로 10분 이상 열차 운행이 늦어지면 적용된다.

또 인천교통공사와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 부산교통공사, 대구도시철도, 광주도시철도, 대전도시철도 등 지방공기업이 평가등급에 따라 직원들의 성과급도 5단계로 나뉘어 0%에서 최대 200%까지 차등 지급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관사와 관제사들은 전동차 운행 중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연운행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9명의 기관사가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따라 다소 열차 지연이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의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주어진 매뉴얼과 절차에 따라 차분히 확인하고 운행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추가 인력을 투입해 ‘무인열차 운행시스템’과 ‘1인 승무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

안전문제를 결코 '경제문제'와 '효율성'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기관사와 관제사들은 시간에 쫓기며 불안한 운행에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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