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긴급 언론발표를 통해 지난 대선 때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에서 표현 등과 관련해 최씨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이런 관계는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이어졌지만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중단됐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사과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국민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여태 모르는 셈이다.
◇ 연설문 수정은 빙산 일각…전방위 개입 정황 또 불거져
먼저 박 대통령은 최씨가 가필한 청와대 문서가 연설문과 홍보물에 국한된다고 했지만 최씨의 개입 흔적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JTBC 등 보도에 따르면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자격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할 당시 회담 시나리오도 최씨가 사전열람했고 여기에는 민감한 경제와 국방 현안이 들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씨는 청와대와 정부 인사에까지 개입한 의혹의 불거졌고, 심지어 박 대통령 취임식 행사와 기념우표 등에 이르기까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가히 만기친람식 행태를 보였다.
최씨가 청와대 문서를 쥐락펴락 했던 기간과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은 모호함 속에 실체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일정 기간’이라 했고 이는 문맥상 ‘보좌체계 완비’ 이전까지를 뜻한다. 그런데 최씨의 PC에 남은 최근 파일이 2014년 3월 27일 저장된 것임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은 취임 후 1년여 동안 보좌체계가 미비한 상태에서 국정을 운영한 셈이 된다.
이처럼 궁색한 해명은 다시금 거짓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자칫 추가 해명과 사과를 해야 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최씨와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이미 거짓말을 한 상태다.
◇ 진정성 없는 부실 사과…“의혹 끝난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
박 대통령의 사과는 2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에 사전 녹화방송이라는 점 등으로 형식면에서도 부실했다.
박 대통령의 기존 방식이긴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일체 받지 않는 일방통행식 발표여서 차마 기자회견이라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사건의 진상과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고, 해명은 했지만 의혹은 오히려 커져갔다.
새누리당 비박계 3선인 김용태 의원은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의 사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최씨의 청와대 문서 가필에 대해서만 시인했을 뿐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모금 의혹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대통령 본인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는 데만 급급했다.
청와대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권력을 사칭한 호가호위 사건으로 한정하며 박 대통령 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잘못을 시인한 이상 문책과 처벌은 불가피한 수순이 됐다. 비록 형사상 불소추특권이 있긴 하지만 정치적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다. 새누리당 김현안 대변인조차 국회 브리핑에서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사과한다고만 했을 뿐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지는 아무런 말이 없어 ‘참 나쁜’ 사과의 주인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