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박근혜표 개헌론'에 잔뜩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야당은 박 대통령에게 개헌 논의에서 빠질 것을 요구했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실망감과 함께 반발 기류가 역력하다.
◇ 야당 "대통령은 개헌에서 손 떼야…최순실 게이트 해명이 먼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5일 기자회견에서 "개헌보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헌은 '최순실 개헌'이자 '정권연장 개헌'으로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추 대표는 또 국민 중심의 개헌 원칙을 강조하면서 "임기 말년의 박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서 빠지라"고 했다.
그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며 청와대 주도의 개헌론에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이런 방침 하에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개헌연구 자문회의'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른바 '제3지대론'이 탄력을 받을 것에 내심 기대를 품고 박 대통령 제안을 긍정 평가했던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태도도 하루 만에 냉랭해졌다.
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개헌은 대통령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만약 청와대가 개헌을 발의하려면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탈당해야한다"고 말했다.
제7공화국을 열자며 정계복귀와 함께 탈당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은 헌법상의 권한에도 불구, 개헌에 관한 주도적 역할에서 일체 손을 떼야 한다"며 "그것이 개헌을 돕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기류 변화는 최순실 게이트가 청와대 연설문 개입 의혹으로까지 번지며 박 대통령의 '임기내 개헌' 제안이 정략적이란 의구심이 더욱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자백하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고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내각 총사퇴와 청와대 비서실 전면개편을 요구하기도 했다.
◇ 靑 연설문 개입 불거지자 새누리당도 싸늘…정진석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전날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호응했던 새누리당의 분위기도 급격히 싸늘해졌다. 개헌 자체에 대한 언급이 줄어드는 대신 최순실 게이트 파장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집권 여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면서 박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요구했다.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박 대통령의 어록인 '배신의 정치'를 역이용해 "최순실 사태는 '배신의 정치'의 결정판"이라고 규정하며 특검을 촉구했다.
개헌론자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최순실 관련) 진실이 모두 밝혀 질 때까지 정치권은 개헌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여권 잠룡 중 한 명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대통령의 진심을 담은 소상한 해명과 적극적 수사의지, 그리고 관련자 엄벌 의지 표명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론과 관련해서도 유승민, 나경원 의원 등은 최씨의 청와대 연설문 개입 의혹이 불거지기 전부터 박 대통령 주도 개헌에는 이미 부정적 입장을 밝힌 상태다.
최순실 게이트로 청와대발 개헌론이 정당성을 잃게 됨에 따라 박 대통령은 개헌의 불씨만 당긴 채 손을 떼야 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레임덕이 가속화되는 역풍에 직면할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