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관련 보도가 나온지 하루 뒤인 25일 "모든 경위에 대해 다양한 경로로 파악 중"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유출된 게 맞는지', '지금까지 파악된 게 뭔지', '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인지' 등 잇따른 질문에 "파악하고 있다"는 답변만으로 일관하며 딱 부러지는 대응을 못했다.
그동안 잇따라 제기된 여러 최순실 의혹에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일축해온 청와대 기조와는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무시 전략'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의혹의 규모가 크다는 얘기다.
2년전 '청와대 십상시 문건'이 언론에 유출됐을 때 박 대통령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을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로 규정했었다.
특히 문건이 발견된 최순실씨 개인 컴퓨터의 보안성 문제도 심각하게 따져봐야할 대목이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개인 컴퓨터가 보안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씨 컴퓨터가 해킹당해 제3국이나 국내 이해당사자 등에게도 '사전 유출'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야권 관계자는 "물론 참여정부에서도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적은 있다. 그러나 언론이나 국회의원에게 '사후'에 유출됐던 것들뿐이지, 이번처럼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는 없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를 둘러싼 '비선 실세' 의혹이 보강되면서,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선언한 개헌 추진 작업의 정치적 구심력도 약화될 전망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개헌정국으로 국면전환 되길 바라던 여권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여권 일각에서는 "최순실 이슈를 덮어야 할 개헌 이슈가, 다시 최순실 의혹에 덮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연일 언론에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차마 머리를 들 수가 없다"며 "언론 제기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국민께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