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싸움,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신간 '나는 왜 네가 힘들까?'

매일 똑같은 싸움,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연인, 배우자, 직장 동료, 사춘기 자녀 등 특정 인물과 싸울 때 우리는 종종 깨닫곤 한다. 내가 왜 이 말을 또 하고 있지? 왜 이 사람과 말하기 시작하면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나지?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항상 답 없이 불쾌하게 끝나 버리는 다툼.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에, 마치 어떤 게임 안에 저 사람과 내가 갇힌 기분이다.

이 뻔하고 진 빠지는 관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로 수많은 독자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던 크리스텔프티콜랭이 답답한 '심리 게임'을 풀어낼 명쾌한 처방을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나는 왜 네가 힘들까'에서 우리가 왜 정해진 사람과 정해진 싸움을 반복하는지, 게임을 주도하는 세 가지 유형은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 나와 상대방은 각각 어떤 유형을 선호하는지, 소모적이고 상처만 남기는 이 게임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준다.

이 뻔하고 진 빠지는 싸움들은 분명 ‘게임’이다. 포문을 여는 계기, 쟁취해야 할 목표, 패턴화된 규칙이 있다는 점에서 게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아내는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지금 몇 시야?”라는 진부한 대사를 날린다(포문을 여는 계기). 몇 시인지도, 남편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면서 던지는 말이다. 남편은 예상대로 반응한다. 자기도 피곤하고 힘들다며, 분명 먼저 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패턴화된 규칙). 그러나 결국 이 게임의 승자는 아내다. 아내가 자신과 가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며 죄의식을 자극하자, 남편은 말문이 막혀 사과한다. 새벽 1시에 귀가했다는 이유로 남편을 ‘무책임한 가장’으로 만들어 버린 아내는 홀로 가정을 지키는 ‘헌신적인 배우자’가 되었다(쟁취해야 할 목표).

‘심리 게임’이라는 용어는 1963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류분석의 창시자인 에릭 번(Eric Berne)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에릭 번은 사람들이 다투는 방식이 일정한 순서를 따라 반복되고 예상 가능한 패턴을 보이다가 마침내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패턴에 일상적인 용어를 붙여 심리 게임 목록을 만들었다. ‘너만 없었으면’ 게임, ‘너 이번에 딱 걸렸어’ 게임, ‘정말 너무하죠!’ 게임 등 이름만 들어도 상황을 연상할 수 있도록 갈등 유형을 정리했다.

또한 그는 심리 게임의 ‘미묘함’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우리가 되풀이하는 싸움들이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진정한 동기는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대체 몇 시냐’는 물음은 결코 남편의 귀가 시간을 당기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은 그렇지 않지만 나는 당신과 가정에 항상 헌신하고 있다’고 어필하고 싶은 아내가 던진 게임의 ‘떡밥’이었다.

이제 막 직장에서 돌아왔다. 남편은 컴퓨터로 뭘 들여다보는지 사람이 왔는데도 고개를 드는 둥 마는 둥이다.
“당신은 오늘 별일 없었어? 저녁으로 뭘 먹을까?”
남편이 “응, 아무거나 먹지.” 혹은 “나도 몰라.”라고 건성으로 대꾸한다. 나는 이 무관심이 슬슬 언짢아지기 시작한다. 그럼, 게임의 판을 벌이자.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남편의 약점은 모두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여보, 내가 한 마디 해야겠어. 이번 주말에는 제발 차고 좀 치워 줘. 얼마나 난장판인지 자전거도 못 꺼낼 지경이라고.”
내가 제대로 허를 찔렀다면 남편은 즉각 반응할 것이다.
“뭐? 주중에도 힘들게 일하는데 그따위 잡일로 주말까지 날려야 해? 요즘 계속 눈 오는 거 안 보여? 이런 날씨에 자전거 끌 일이 뭐가 있다고 난리야! 당신은 꼭 급하지도 않은 일로 사람을 달달 볶아야 속이 시원해?”
자, 나는 드디어 남편의 관심을 끌었다. 이 관심을 잡아 놓으려면 세게 받아쳐야 한다.
“그럼 난? 나는 뭐 노는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일하는데!”(본문 25쪽)

이 싸움의 주인공들은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는 게 아니다. 사실 자전거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진짜 메시지를 감춘 채 한 판 게임을 벌이고 있다. 왜? 상대의 관심을 붙들어 두고,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못난 자아의 허기 때문에 상대를 건드리고 거나하게 한 판 싸우는 것이 ‘내가 없다’는 느낌보다 더 강렬하고 생생하다.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차고가 사실은 축복이다. 그 차고를 핑계로 두 사람은 얼마나 그악스럽게 싸울 수 있었던가!

심리 게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자긴 아무 잘못이 없다며 징징거리는 피해자형, 넌 늘 왜 그 모양이냐며 훈수 두는 박해자형, 굳이 도와주겠다고 폭 넓은 오지랖을 자랑하는 구원자형.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라. 각자가 택하는 역할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주로 선호하는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즐겨 택하는 역할에 따라 나의 역할까지 결정된다.

◇ "널 위해서야, 나만 믿어" -의존적 관계를 조장하는 구원자형

구원자는 겉보기에 너그럽고 이타적이고 균형 잡힌 인물처럼 보인다. 언제나 먼저 나서서 당신을 돕고 감싼다. “가만 있어 봐, 엄마가 다 알아서 해 줄게.”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나만 믿어.”

하지만 그는 보호자 입장을 취하면서 당신을 어린애 취급하고 의존적인 관계를 초래한다. 당신을 과소평가하고 자기가 곧 문제의 해결책인 양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이렇게 대단히 헌신했으니, 당신이 자신에게 큰 빚을 진 셈이라고 필요할 때마다 상기시킨다. “내가 널 위해 어떻게 했는데….”

그들은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상정하고 거기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근사한 자기 이미지를 만들고 에고를 살찌우기 위해 자신의 선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구원자의 이러한 행동 뒤에는 자기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그는 당신에게 끊임없이 ‘나 없이는 결코 잘해 나갈 수 없을’ 거라고 다정하게 속삭인다.

◇ "넌 도대체 왜 그 모양이냐?" -비난하고 겁주는 박해자형

박해자는 당신에게 무정하게 대하고 경우에 따라 언어적·신체적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권위적이고 서슬 퍼렇고 꼬장꼬장하고 사람을 멸시한다. “너는 정신상태가 글러먹었어.” “그 나이 되도록 할 줄 아는 게 뭐야? 쓸모없는 놈….”

그는 이렇게 자기 분노를 분출함으로써 욕구 불만을 해소한다. 상사에게 깨지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큰소리치는 남편은 전형적인 박해자형이다. 남편 때문에 화가 난 아내는 아이를 쥐 잡듯 잡거나 공연히 반려견에게 소리를 지른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공격하면서 자기 권능을 확인하려 든다.

그는 아마 자신의 유년기를 박탈당하다시피 했을 공산이 크다.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거나 항상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강요받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불안도가 높은 완벽주의자로 길러져, 실수나 미숙함을 인정하지 못한다. “생각 좀 하고 살아. 뇌는 장식품이 아니야.”

◇ "아무것도 몰라요~" -동정심을 자극하는 피해자형

피해자는 순진무구해서 아무것도 모르며, 아무 힘도 못 쓰는 사람이다. 애처롭게 보이고 우는소리를 많이 하고 수동적이다. 착하고 선의가 넘치지만 야무지지 못하고 왠지 답답하다. “몰랐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는 이런 방식으로 동정심과 연민을 불러 모은다. 따라서 상당한 관심을 독점할 수 있다. 당신의 따스한 조언과 ‘구조’를 기대하며, 현재 자신의 고통과 미래의 잠재적 행복까지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 최종 목표는 상대의 동정심을 자극해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도통 자기 책임이라곤 없다. “네 아빠랑 결혼만 안 했어도….”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그는 은근히 당신의 죄의식을 자극한다. “난 이렇게 아픈데 너는 어떻게 그리 잘 지내?” 또는 수줍은 얼굴로 조심스레 당신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이런 말을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네가 없으면 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 이세진 옮김 | 부키 | 200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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