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을 위한 교본, 50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

신간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마녀사냥을 위한 교본'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마녀사냥을 위한 교본'. 수백 만의 여성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기에 절대로 출간되어서는 안 되었을 이 책은 1486년에 독일에서 처음 발행되었다. 역사상 가장 심각한 여성 혐오를 조성했던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어떻게 여자가 마녀가 되었고, 또 마녀가 된 그들의 특징은 어떠하며 그 마녀들의 재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쓰고 있다.

이 책은 하인리히 크라머와 야콥 슈프랭거의 공저로 알려져 있다. 하인리히 크라머는 독일 도미니크 교단의 가톨릭 사제였던 헨리쿠스 인스티토르Henricus Institor의 라틴어화된 이름이다. 그가 주 저자였는데, 이 책의 공신력을 더하기 위해 야콥 슈프랭거를 공저자로 끼워 넣었을 뿐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슈프랭거가 집필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이 책은 1486년 독일 남서부의 도시 슈파이어에서 출판되었다. 슈파이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대성당이 지금도 풍광을 지배할 정도로 종교적 색채가 강한 도시였다. 마법과 그 실행자인 마녀가 실재한다고 주장한 이 책이 출판된 지 3년 만에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출판 이후 30여 년 동안 20쇄를 찍고, 1574년부터 1669년 사이에 16쇄를 더한 이 마녀 사냥의 교본은 르네상스 시대 이래 법정에서 마녀의 단죄를 위한 지침을 제공하며 마녀 사냥의 광풍과 대중의 미신과 종교 개혁으로 말미암은 종교적 긴장을 악화시켰다.

본디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법이나 마녀의 실재를 부정했다. 그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꿈이나 환각 속에서 악마의 꾐에 빠져 오랜 이교도의 과오에 빠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마법을 믿는 사람은 있었지만, 당시까지 그들에 대한 처벌이라 해야 사람들 앞에서 하루 정도 벌을 서며 망신을 당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가 나온 뒤 사람들은 마녀가 실재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마녀에 대한 처벌도 잔인해졌다.


실상 하인리히 크라머는 티롤 지역에서 마녀로 지목된 여인을 기소하다가 실패하여, 오히려 그가 주교로부터 '망령이 든 노인'으로 취급받으며 인스브루크에서 추방된 적이 있었다. 평상시에도 상궤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던 그에 대한 성직자들의 평판도 그를 추방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지만, 어쨌든 하인리히 크라머로서는 자신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마음도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마녀 사냥을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니, 마녀의 사악한 의도, 악마의 도움, 그리고 처벌에 대한 신의 허락이 그 요인들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마녀의 실재를 부정하며 따라서 그들에 대한 처벌도 거부하는 성직자들을 겨냥한다. 2부에서는 마법의 여러 형태와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며 3부에서는 재판관과 심문관들로 하여금 마녀에 대처하여 그들을 처벌할 방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마법을 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성도 있었고 지역에 따라서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여성이 훨씬 많았고, 그것은 라틴어의 제목에서부터 반영된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라는 제목의 말레피카룸은 여성형 소유격으로서 특히 '마녀의'라는 뜻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여성이 색욕과 같은 욕망에 더 취약하며 도덕적으로도 더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제목에서부터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마녀의 배후에는 악마가 존재하며 그들은 난교를 벌인다. 그러나 악마의 목적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단지 마녀를 타락시키는 데 있다.

책 속으로

마법 이단을 전파하기 위해 마녀들은 다음과 같은 만행을 저지른다. 첫째, 가톨릭 신앙을 모욕적으로 부정한다. 둘째, 자신의 영혼과 몸을 판다. 셋째, 세례받지 않은 아이들을 악마에게 넘겨준다. 넷째, 인큐버스, 서큐버스와 성관계를 맺는다.
아아, 이 모든 것이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아, 이 끔찍한 신성 모독이 교회를 뒤흔들어 놓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교황의 교서가 입증한 바에 따르면, 상황은 우리의 바람과는 전혀 딴판으로 돌아가고 있다(마녀들의 자백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결코 이단 심문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법 이단의 기원과 확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는 사리에 맞고 또 성경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것들을 한데 모아 철저한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마법 이단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두 가지 현상, 즉 ‘인큐버스와 서큐버스의 활동’과 ‘아이들을 악마에게 바치는 행위’다. 따라서 우리는 악마와 마녀 그리고 신의 묵인을 논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 논점들을 짚어 볼 것이다. 그리고 악마의 활동은 일정한 천체 배열에 의해 좌우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체 배열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결국 우리 앞에는 세 가지 논점이 놓여 있다.
52쪽

마녀들은 평범한 이단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신앙을 거부하고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아주 지독한 배교자들이다. 그러므로 설령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또 신앙을 되찾는다 해도 마녀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형뿐이다.
그리고 금지된 것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들의 죄 또한 마녀들의 죄 못지않게 무겁다. 그런 자들은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은 물론, 시민권까지 박탈당해야 한다. 끝으로, 여자들에게 마법을 걸어 간음하게 만드는 자는 짐승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165쪽

마녀가 하늘을 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먼저 아이를 살해한 다음 그 시신을 끓여 연고를 만든다(마녀가 특히 눈독을 들이는 것은 세례받지 않은 아이들이다). 그리고 악마의 지시에 따라 의자나 지팡이에 연고를 바르면 마녀의 몸이 공중에 떠오른다(이런 일은 밤에 할 수도 있고 낮에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눈에 안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이때 연고를 사용하는 것은 아이들로부터 세례와 구원의 은총을 빼앗기 위함이지만 연고가 없다고 해서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마녀가 동물을 타고 비행하는 경우에는 연고가 없어도 된다(마녀가 타고 다니는 동물은 진짜 동물이 아니다. 그것은 동물의 모습으로 가장한 악마가 분명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로부터의 도움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이때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의 힘이 작용한다.
232~233쪽

이미 여러 차례 고문을 받은 사람은 그 누구보다 고문을 잘 견디는데 이것은 고문대에서 몸이 들어올려질 때 팔을 쭉 뽑았다가 다시 굽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마법의 힘을 빌려 끝까지 자백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죽했으면 자백을 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하겠는가? 형리가 고문 기구를 준비하는 동안 주교(또는 판사)는 계속해서 피고를 설득하는데 바로 이때 ‘목숨을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고문이 다 끝날 때까지 자백을 거부할 경우 판사는 둘째 날, 셋째 날까지 고문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둘째 날, 셋째 날까지도 자백을 거부한다면 그 피고는 풀어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죄를 인정하고 교회의 용서를 구한다면 그 피고는 ‘혐의가 입증된 이단자’로 간주하여 세속 법정에 회부해야 한다.
448쪽

야콥 슈프랭거 , 하인리히 크라머 지음 | 이재필 옮김 | 우물이있는집 | 616쪽 |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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