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에 돔이 얹힌 까닭은?

신간 '건축이 건네는 말', 최준석 지음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에 내로라하는 국내 유명 건축가들이 응모했는데 그중 중견 건축가 김정수(1919~1985)의 설계안이 당선된다. 원안은 반듯하고 정갈한 상자형 건물로 계획되었다고 하는데 정부가 개입해서 당선 안을 여기저기 뜯어고쳤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붕 위에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관공서에서 많이 본 듯한, 어정쩡한 초록색 돔이 얹혔고 거대한 건물의 처마 밑엔 다분히 장식적이며 위압감을 주는 기둥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말로는 다양한 민의를 표현하는 전통 양식의 민흘림기둥 스물네 개를 세운 것이라고 했지만, 그 시대 정국을 돌이켜보면 제국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호위병의 도열이나 다름없었다.
_ 국회의사당

신간 '건축이 건네는 말'은 건축가 최준석이 길 위에서 건축물을 만나며 폭넓은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감응해온 이야기를 직업인으로서, 예술 애호가로서, 생활인으로서 풀어낸 에세이다.

지은이는 선유도 공원, 쌈지길, 종로타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등 현대적인 도시의 명소에서부터 추사고택, 소쇄원, 선교장 등 전통적인 고택과 구엘 공원, 롱샹 성당,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에펠탑 등 이미 전설이 된 해외 건축가들의 걸작에 이르기까지 총 30곳, 다양한 건축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는 ‘리노베이션’ ‘계단’ ‘마천루’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건축 이야기를 풀어내며 풍부하고 흥미로운 해외 사례를 들려주고 국내 건축의 방향을 모색한다.

건축가인 지은이가 삶의 현장으로서 집중하는 곳은 ‘도시’다. 아파트를 비롯해 도시인들의 삶을 구성하는 건물들에, 지은이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1958년 처음 세워진 종암아파트에서 시작해 롯데월드타워가 준공된 잠실 개발까지로 흘러가는 서울의 ‘아파트 역사’는 작은 생활사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종로타워, 아이파크 사옥, 서초 삼성타운 등의 거대한 건물이 도시에 불어넣는 감상과 풍경 변화에 촉각을 세운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공공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세종로가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독재의 흔적을 간직한 국회의사당에는 새로운 쓰임새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로마의 명소인 스페인 광장, 뉴욕 타임스퀘어의 더피 광장을 살펴보며 복잡한 회색빛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새로운 공적 공간을 구상해보기도 한다.


책 속으로

하지만 선유도 공원은 새것에 대한 강박증을 버리고 골동품을 존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은 콘크리트 폐허 속에 자연을 방치하여 그 둘이 공생하게 하는 개념이었다. 공원의 콘크리트 폐허 벽면과 기둥 곳곳에는 무성한 담쟁이덩굴과 갖가지 나무줄기들이 자리 잡았다.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갈라진 옛 정수장 구조체 틈새의 비좁은 공간은 식물들이 촘촘히 메우고 있다. 폐허와 자연의 공존……. 이 낯선 풍경은 어쩐지 아주 먼 미래, 인간이 사라진 도시의 콘크리트 더미가 스스로 자연화되는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_ 선유도 공원

쌈지길(2004)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인사동 골목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하나의 좋은 예시가 되는 건축적 실험이다. 쌈지길이 들어설 무렵 인사동은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던 영세한 작업실과 가게, 갤러리들이 하나씩 밀려나고 거대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본래의 맛을 잃어가던 상태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인사동의 골목길은 자본 논리에 의해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쌈지길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인사동의 골목길 풍경을 차곡차곡 접어 건축으로 재생시킨 결과물이다.
_ 쌈지길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이 집을 처음 지을 당시에는 저택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쉰세 칸짜리 집이었다. 하지만 1976년 개·보수한 추사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당이 조합된 작은 주택으로 조성되었다. 손님을 맞는 사랑채는 낮은 툇마루를 길게 늘어뜨려 넉넉한 바깥주인의 인심을 보여준다. 걸터앉아 담소를 즐기며 바람을 맞는다. 사랑채 앞마당에 핀 작은 과실수와 꽃들을 보며 집을 관통하는 온화한 계절을 느낀다. 사랑채 뒤편으로 돌아가면 안채가 보인다.
_ 추사고택

때로는 멋지고 화려한 건축물보다 모두에게 개방된 공공 계단 하나가 그 도시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몇 해 전 뉴욕 타임스퀘어의 더피 광장에 지어진 레드카펫 계단처럼 말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계단에 대해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전망 좋은 자리는 무료”라는 찬사를 보냈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 작지만 멋진 아이디어를 보태 공공 공간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 훌륭한 사례다.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건 물론이다. 계단의 전면은 매표소. 당일 공연하는 뮤지컬 티켓이나 연극표를 반값에 파는 열두 개의 공공 티켓 부스로 이루어졌다.
_ 건축 이야기 2

최준석 지음 | 아트북스 | 288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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