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와 공민왕, 숙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KBS 1TV '역사저널 그날 - 기황후, 공민왕을 세우다'

드라마 '기황후' 포스터(사진=MBC 제공)
공민왕은 고려의 개혁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고려 여인 최초로 원나라의 황후가 된 기황후였다.

왕위 경쟁에서 두 번이나 조카들에게 밀린 공민왕은 기황후의 도움으로 1351년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기황후는 고려 공녀 출신으로 원나라 순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려와 원나라를 좌지우지하던 기황후는 왜 어린 충정왕을 폐위하고 공민왕을 선택했을까.

23일(일) 밤 9시 40분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의 '기황후, 공민왕을 세우다' 편에서 그 전말이 드러난다.


기황후는 공민왕을 왕위에 올린 뒤 그의 충성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공민왕은 즉위하자마자 각종 개혁을 추진하고, 반원(反元) 행보를 걷는다. 그리고 즉위 바로 다음 해에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공민왕의 최측근 조일신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조일신의 난은 기황후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부원 세력을 숙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황후를 따르는 세력은 생각보다 고려 정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결국 공민왕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조일신을 처단하고 일을 마무리 짓는다. 조일신의 난을 계기로 일련의 개혁을 중단한 공민왕은, 기황후와 부원 세력의 눈치를 보며 반원 운동을 멈추고 납작 엎드리게 된다.

부원 세력의 힘은 기황후의 아들이 황태자로 책봉되면서 더 강해진다. 기씨 일족은 원나라와 기황후의 권세만 믿고 공민왕 위에 군림하려 든다. 그런데 1356년 5월 18일,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 벌어진다. 공민왕이 기철을 시작으로 기황후 세력을 일제히 숙청한 것이다.

이어 부원 세력의 근거지인 '정동행중서성 이문소'를 폐지하고,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기 위해 군대까지 출정시킨다. 공민왕의 반격이 단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원나라의 연호까지 금지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은 고려는 98년 동안 이어진 원나라의 간섭을 끊어내는 데 성공한다.

기황후와 부원 세력을 상대로 승기를 잡은 공민왕. 그런데 공민왕이 흥왕사에 머물던 때 그의 목숨을 노린 50여 명의 자객이 들이닥친다. 한밤중에 공민왕 암살 시도가 벌어진 것이다. 더욱이 원나라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온다. 원나라가 공민왕의 작은아버지인 덕흥군을 고려 국왕으로 세우고, 공민왕의 폐위를 결정한 것이다.

급기야 기황후는 자신의 일족인 기삼보노를 덕흥군의 양자로 삼아 왕으로 만들려고 한다. 결국 덕흥군은 원나라 1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한다. 원나라의 간섭을 끊고 고려의 자주독립을 이뤄내려는 공민왕과 이를 막으려는 기황후의 최후의 대결이 '역사저널 그날'에서 펼쳐진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