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이를 기억해주세요"

[스토리] 울산 계모 학대 사건이 남긴 것

본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늘 밝고 건강했던 서현이.

서현이가 네 살이던 2009년,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다. 아빠는 새엄마를 데리고 왔다. 서현이 가족과 친하게 지내던 A 씨였다. 가족끼리 같이 밥도 먹고 허물없이 지내던 아줌마는 사실혼 관계의 계모가 됐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서현이는 몸에 늘 멍 자국을 그리고 살았다.

시간이 갈수록 계모의 학대수준은 심각해졌다. 하루는 죽도(竹刀)로 아이 머리를 때렸다. 서현이는 머리가 찢어졌다.

어떤 날은 허벅지를 발로 찼다. 아이는 허벅지 뼈가 부러져 응급실에서 수술을 받았다. 부부싸움으로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아이의 손과 발에 뜨거운 물을 뿌렸다. 아이는 2도 화상을 입고 피부이식수술을 했다.

아빠는 서현이가 학대 받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모에게 회초리를 사주기도 했다. 아동학대를 신고 받은 아동보호기관에는 가정사에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2013년 10월 24일 목요일.

초등학교 2학년 서현이는 반 친구들과 부산 아쿠아리움에 소풍을 갈 예정이었다. 이사와 전학이 예정돼 있었지만 서현이는 친구들과 소풍을 꼭 가고 싶었다.

소풍 당일 날, 계모는 아침부터 서현이를 때리고 있었다. 2300원이 없어졌다는 이유였다. 계모는 담임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현이가 아파서 소풍을 못 갈 것 같습니다."

계모는 발로 서현이 배와 옆구리를 찼다. 아이가 막으면 머리를 때렸다. 40분간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서현이는 몸이 아팠지만 용기를 내 계모에게 다가갔다.

"엄마 미안해요. 그런데 친구들과 소풍 가고 싶어요."

계모는 다시 이성을 잃고 아이를 때렸다.

시퍼렇게 멍든 아이의 몸은 어른의 발길질을 이겨낼 수 없었다. 24개 갈비뼈 중 16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출혈이 생겼다. 서현이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계모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아이를 들어가게 했다. 아이 몸에 생긴 멍을 빼기 위해서였다. 욕조에 홀로 남겨진 서현이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9살 아이는 그렇게 하늘로 소풍을 떠났다.

서현이 이름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전국에서는 계모와 친부를 엄벌해달라는 탄원서가 날아왔다.

검찰은 학대가 장기간에 걸쳐 행해졌던 점, 반인륜 범죄인 점, 반성의 기미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계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계모와 변호인은 살인에 고의가 없었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살해 의도를 인정하지 않고 상해치사죄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명백한 살인 행위가 있었는데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자 재판부에 비난을 쏟아냈다.

항소한 검찰은 해외 판례, 검찰시민위원회, 부검의,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다시 사형을 구형했다.

2014년 10월 16일 항소심 선고일이 됐다.

징역 18년. 원심보다 3년 늘어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계모의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했다. 맨손, 맨발로 이뤄진 아동학대 사건에서 살인죄를 인정한 국내 첫 판결이었다.

'상고를 포기합니다.'

계모는 손도장을 찍은 상고포기서를 제출했다.

아이를 외면했던 친부의 재판도 이어졌다. 1심 징역 3년이 부당하다며 친부가 항소한 끝에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서현이를 앗아간 친부와 계모의 범죄는 그렇게 끝이 났다.

신고의무자였던 서현이를 진료했던 의사와 간호사, 아이가 가르쳤던 초등학교 선생님, 학원 강사 등 8명은 처벌되지 않았다. 학대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고 신고의무를 위반한 게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조금만 더 관심 있게 지켜봤으면 또래 친구들과 마음껏 뛰며 놀고 있을 아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울산 계모 학대 사건을 계기로 서현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만들어졌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서현이법'으로도 알려졌다.

서현이법은 아동학대치사죄, 상습범에 대한 가중처벌, 법원에 의한 친권상실, 가해자 접근 금지 명령이 가능하고 아동학대 범죄가 발생하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는 등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

신고 의무도 강화됐다. 이제 사람들은 아동이 학대받고 있는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해야한다. 아동보호시설 종사자들에게도 신고가 의무화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제2, 제3의 서현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서현이법은 그동안 부모의 '훈육'이란 그늘 속에 고통받고 있던 아이들을 찾아냈다. 2014년 9377건, 2015년 1만956건. 법 시행 전인 2013년 6008건보다 훨씬 많은 수치였다.

하지만 특례법 취지와 달리 학대가 발생하더라도 피해 아동이 다시 부모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곤 했다. 간혹 중형이 내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피해 아동이 세상을 떠난 후였다.

원영이, 채린이, 윤성이, 성민이, 주희.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들.

그리고 2013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난 서현이.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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