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도우미 소녀' 대안가정 되겠다던 기관들…어디로

[방임청소년, 그 후②]

대전CBS는 지난 3월 불법 노래방 도우미가 된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의 사연을 보도했다. 당시 이런 위기청소년들을 돕자며 대전지역 유관기관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7개월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다시 거리로…왜 소녀는 모텔촌으로 되돌아갔나
② '노래방 도우미 소녀' 대안가정 되겠다던 기관들…어디로
(계속)

'주희'들은 여전히 매 순간 끼니를 걱정하고, 잘 곳이 필요하고, 몸과 마음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과 싸우고 있었다. (사진=자료사진)
"다행히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뭐든 해야 되는데 그렇다고 돈을 훔치기에는 그렇고…"

칼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온 뒤 거리를 헤매다 불법 노래방 도우미 일로 접어들게 된 주희(가명·16·여).

주희가 처음부터 이 일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먹고 자는 문제에 부딪혔고 일자리가 절실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성년자에, '부모동의서'도 낼 수 없는 주희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어렵게 일을 하고도 돈을 떼이는 일 역시 허다했다.

몇 달을 지하상가나 공원 벤치에서 잠을 청하고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을 때 '일'을 제안받았다.

대전시는 주희와 같이 생존 사각지대에 놓인 학대·방임청소년들에 대한 대책을 찾겠다고 했다.

지난 3월에는 교육청, 경찰 등 유관기관·단체 20여곳이 모여 첫 논의에 나섰다. 지역사회가 '대안가정'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종합지원체계를 만들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 권선택 대전시장은 "오늘의 회의는 시작일 뿐"이라며 "조기 발견부터 법률과 의료지원, 시설보호, 치료회복, 사회적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구체적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하반기 중 실행계획을 논의하자고도 했다.


지난 3월 열린 '위기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 (사진=김정남 기자)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차기 회의는 아직 '검토 중'이다.

당시 대책회의를 주관했던 대전시 여성가족청소년과의 담당자는 "다른 현안들이 있다 보니 구체적으로 잡힌 것은 없다"며 "11월쯤 개최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기존에도 기관·단체 간 연계하는 체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협력이 미흡했던 것"이라며 "그것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듯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청소년 지원단체 관계자는 "회의 때도 지적이 됐지만 위기청소년 문제는 기존 체계나 접근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단순 가출청소년 대책이 아니라 이들이 처한 다각적인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시급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민간 영역에서의 노력만으로는 단체 각각이 가진 자원도 한정적인데다 지속성을 갖기도 어렵기 때문에 구심점으로서의 시의 역할에 기대가 컸다"며 "그래도 시장, 교육감 등이 직접 참석해 의지를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보여주기 식 대응에 그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지역 위기청소녀 통합지원센터'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 이후 진전된 사항은 아직 없다.

대전시 관계자는 "그간 정치권과 별다른 교감이나 논의는 없었다"며 "시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청소년 담당이 맡아야 할지, 여성·가족·보건복지 등 어느 쪽에서 맡아야 할지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주희'들은 여전히 집을 떠난 뒤 매 순간 끼니를 걱정하고, 잘 곳이 필요하고, 몸과 마음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과 싸우고 있었다.

최근 실시된 지역 첫 실태조사에서는 대전지역 위기청소녀의 절반 이상이 부모의 폭행과 폭언 등 가정 문제로 집을 나오고 4명 중 1명은 성폭력 피해와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에게 쏟아진 사회의 관심은, 잠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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