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 해부, 이슬람 혐오 부추기는 중간계층

신간 '샤를리는 누구인가?: 자유 표현의 상징인가? VS 불평등이 낳은 괴물인가?'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엠마뉘엘 토드는 저서'샤를리는 누구인가?: 자유 표현의 상징인가? VS 불평등이 낳은 괴물인가?'에서 샤를리 에브도 Charlie Hebdo〉에 대한 테러 이후 이 사건이 불러일으킨 다양한 사회적 파장에 주목한다.

〈샤를리 에브도 Charlie Hebdo〉 테러의 직접적인 원인은 풍자화를 통해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신성모독’한 데 있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타인의 종교에 대한 모독을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사회에서 “이슬람이라는 소수 종교에 대한 낙인찍기와 이슬람을 프랑스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로 여기게 만드는” 언론의 무자비한 횡포,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이슬람이라는 소수 종교에 대해서 풍자의 자유를 주장하는 무정부 신문사(샤를르 에브도)를 옹호하기 위해, 3, 4백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온 시위가 과연 정당한 일이었는지 묻고 있다.


엠마뉘엘 토드는 1월 11일 시위대들이 외친 ‘나는 샤를리다’에 나타나 있는 가치는 사실상 불평등의 관행을 감추고 있다고 본다. 그는 확고한 태도로 중간계층들의 ‘이슬람 혐오증’을 말하고 왜 프랑수아 올랑드의 사회당이 그 후로 ‘우파에 닻’을 내렸는지 분석한다. / 〈르 몽드〉, 2015. 5. 8.

프랑스 내 이슬람 이민자들은 프랑스 전체 인구의 약 10%, 6백 만명 정도이고, 이 가운데서도 이슬람 종교를 실천하는 무슬림은 20%에 불과하다. 즉 프랑스 무슬림들은 소수민족이고, 그 중 극소수만이 이슬람 종교를 가지고 있을 뿐,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다문화가정을 이루거나 프랑스인으로 동화된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통계자료로 비추어 볼 때, 무슬림 청년들의 실업률은 50%로 프랑스 평균 청년 실업률의 두 배에 달하고, 감옥에는 무슬림 수감자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은 이민자들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한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가담한 쿠아시 형제나 다른 테러범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IS 가담자 대부분은 독실한 신자라기보다는 지속적인 가난과 실업으로 변두리로 내몰린 아웃사이더들이었다.

IS 테러가 잇따를수록 피지배 집단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반감은 이민자나 난민에 대한 차별 수준을 넘어서 이슬람 혐오증 내지 이슬람 공포로 나타나고 있다.
저자가 지리 통계학적 분석으로 각 도시별로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의 지리적 분포를 조사해보고 사회학적으로 분석해보자, 놀라운 결과가 드러난다.

‘Je suis Charlie 나는 샤를리다’를 외치며 거리 곳곳을 행진했던 수백만의 샤를리들은 실상 이슬람 혐오와 종교적 배타성으로 똘똘 뭉친 중간계층이었으며, 도시 근교의 빈곤층과 젊은이들은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샤를리가 자유와 공화주의의 가치를 주장한다고 하지만, 그날 분노하며 걸었던 실제 중간계층은 그런 이상과는 동떨어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그들은 마음속에 보수주의와 집단이기주의, 지배와 차별의식을 품고 있었다.

저자는 현 프랑스 사회를 주도하는 패권 집단이자 중간계층을 MAZ(중간계층, 고령자, 좀비 가톨릭 : classes Moyennes, personnes Ag?es, catholiques Zombies)라 명명하고, 이들이 바로 불평등을 야기하고, ‘샤를리’란 이름으로 이슬람 혐오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계층이라고 주장한다.

유럽통합을 위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프랑스 사회계층은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이후 20년 이상 취약계층은 유로화체제하에서 더욱 어려워졌다. 강한 프랑화, 유로화를 향한 행보가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민주주의를 타락시켰다. 자유무역으로 청년실업은 증가하고, 빈곤층과 이민자들에게 기회는 더 더욱 돌아오지 않았다. 더구나 우파에 닻을 내린 사회당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보수 우파가 그랬던 것보다 사실상 더 무관심하고 더 가혹해졌다. 이러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이 사회적 약자, 특히 무슬림 청년들을 가난과 실업으로 내몰고 이들은 결국 범죄와 테러조직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유로화체제하에서 프랑스 정부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 경제적 주도권을 내주고 약한 행보를 보여 왔다. 프랑스의 지배계층과 중간계층은 이로 발생한 경제적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책임을 이슬람과 난민에게 떠넘기고 있다.

엠마뉘엘 토드는 프랑스 사회가 오래전부터 안고 있었던 불평등의 문제를 명료하게 분석하면서, 프랑스가 나아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저자는 우선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을 야기하고 경제적 취약 계층인 젊은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유로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처럼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것만이 프랑스를 실업과 불평등의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지만, 영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프랑스는 이슬람 이민자들과 다문화 가정을 포용하자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를 수용해 온 덕에 프랑스는 세계적인 문화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고, 파리는 세계인의 수도가 되었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를 수용하고, 발전시킬 때만이 진정한 프랑스의 진면목을 찾을 수 있으며, 프랑스 공화주의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 묘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 저자가 제시한 대안들은 현재 상황에 비추어볼 때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엠마뉘엘 토드 지음 | 박아르마 옮김 | 희담 |288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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