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공개된 자료는 그간 뜬소문처럼 돌던 문화계에 대한 청와대 정치 검열과 '블랙리스트 1만 명'설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총 9,473명인 '블랙리스트' 인사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문학인 754명,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6,517명,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을 한 1,608명이다.
이 '블랙리스트'는 청와대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 내려 보냈고, 표지 뒤에는 100장이 넘어가는 두꺼운 분량으로 9,473명의 구체적인 명단이 정리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실제 해당 리스트에 포함된 문화예술인들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당 선언에는 유명 배우 및 감독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 중 일부를 취재한 결과, 서명 이후에 특별한 외압을 느끼지는 못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같은 결정은 배우 개개인에게 맡겨야 한다면서도 사실 활동에 영향을 미칠까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러나 영화제작자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꾸준히 실체 없는 검열이 존재해왔고, 이 때문에 창작자들이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독립영화 제작자 A 씨는 "나 같은 경우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을 위해 작품을 낼 때, 아예 내 이름이나 우리 제작사 이름을 빼고 내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했다.
이 제작자가 홍길동과 진배없는 상황이 된데는 정부 비판적인 영화들을 여럿 제작, 배급한 경력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는 "위에 찍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물론 찾아보면 나오지만 혹여나 불이익이 갈까봐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영화계에서 이 같은 검열 이슈는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막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던 것이 확실한 문서가 되어 날아들었을 뿐이다.
다른 제작자 B 씨는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분명히 이전에는 작품성이나 수상경력을 따져봤을 때 지원작으로 선정이 될 수 있는 영화들이 미끄러진다. 세월호에 서명한 감독이 세월호 다큐를 만든다? 그러면 100% 선정이 불가능하다. 펀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문제는 '심증'만 가득하지 '물증'이 없는 현실이다.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이나 또 다른 실무자들의 양심 고백 없이는 그 실체가 드러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B 씨는 "구두 검열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는데 검열 받은 당사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누구에게 당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사실 심사 기준 등 내부 사정을 우리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니 뜬소문 같은 검열만 계속되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시대착오적 과오라고 비판했다.
20년 넘게 제작업에 종사한 제작자 C 씨는 "박정희 시대나 있을 법한 저런 유치한 리스트가 말이 되느냐. 리스트가 있을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세월호, 문재인, 박원순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눌 줄은 몰랐다. 청와대는 또 문체부를 방패로 책임 소지를 회피하며 뭉개고 있다. 언론이 좀 더 사실을 파헤쳐 줬으면 한다. 그래야 영화인들을 비롯한 문화인들이 연대해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침했다.
A 씨는 "문화는 전문적이고 투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분야다. 그런데 정부가 정치적인 판단으로 개입하는 정황 자체가 지금 시대에 일어난다고는 믿기 힘든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영화계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적으로 위축된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