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최영미 '혼자라는 건')
그런데 대학로에서 젊은이들을 줄 세우는 순댓집이 있다. 파스타, 숯불고기, 쌀국수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즐비한 대학로에서 그들은 왜 굳이 순댓국집에 줄을 서는가?
◇ 내가 먹을 수 있는 순대를 만들자
대학로에서 면 전문점을 하던 육경희 사장에게는 오랫동안 눈독을 들이던 가게가 있었다.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동숭아트센터' 바로 앞이라는 것도 좋았고 특히 멋진 테라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던 차에 그 가게가 갑작스럽게 매물로 나왔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였지만 무조건 계약을 했는데 그 집이 하필 순댓집이었다.
젊은이들이 바글거리는 대학로에서 테라스가 있는 멋진 가게. 거기에 걸맞게 그는 뭔가 다른 메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갖고 있는 걸 모두 털어서 가게를 인수한 터라 업종을 변경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어차피 임대료는 나가고 급한 것만 정비를 해서 일단 영업을 하기로 했다.
"대충 유지만 하다가 돈이 모이면 새로운 걸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웬 걸? 그런 상황에서도 장사가 꽤 잘됐다. 끼니때는 배를 채우려는 손님들이 자리를 채웠고, 저녁에는 술안주로 아침에는 해장을 하러 오는 손님들로 가게는 꾸준히 돌아갔다. 손님의 연령대 역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손님들을 보면서, 순대란 음식은 과거에도 먹었고 지금도 먹고 있고 미래에도 분명 먹게 될 진정한 소울 푸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양의 소시지도 순대와 같은 맥락을 가진 음식이다. 우리는 선지의 유무 여부로 진짜냐 아니냐를 따지지만 순대의 정의는 단순하다. 동물의 내장에 소를 채워 만들면 순대다.
순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신한 육경희 사장은 순대의 롤 모델을 찾고 싶어서 3~4개월간 전국의 내놓으라하는 순댓집을 순회했다. 하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순대가 없었다.
"나는 어떤 순대를 만들어야 되나 고민에 빠졌죠.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순대'에 관한 책이란 책은 다 뒤졌어요. 그러다가 '시의전서'라는 조선시대 요리책에서 순대 레시피를 찾았고 그대로 재현해봤습니다."
'시의 전서'는 조선시대 후기 조리서로 이 책에서 '도야지 순대'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돼지 순대의 조리법까지 적혀 있어서 재현해 봤다고 한다. 숙주, 미나리, 무, 배추김치, 두부, 파, 생강, 마늘을 다져넣고 깨소금과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 각종 양념을 섞어 선지와 함께 주물러, 깨끗이 씻은 돼지 창자에 넣고 쪄냈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보니 맛이 없었다. 고민 끝에 식감을 높여주는 양배추와 당면 등 현대 재료와 양념을 가미해 자신만의 순대를 만들었다.
"기본에 충실한 전통 순대라고 할 수 있죠."
신선한 식재료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그는 주재료가 되는 돼지 부속물은 도축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신선한 것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육경희사장의 순대철학은 하나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순대를 만들자!"
유난히 비위가 약했던 그는 '내가 먹으면 누구라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누구라도'라는 말 앞에는 '순대를 먹지 않는',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이라는 말줄임표가 붙는다. 순대 마니아들에게 육경희 사장의 순대는 너무 가벼웠다. 자고로 순대란 순대 고유의 향과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게 순대 마니아들의 고집인 것이다.
"그런 분들은 이게 무슨 순대냐는 말을 하기도 하세요."
◇ 장사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순댓국 하면 소주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식당에는 맥주가 있다. 그것도 맥주 전문점 못지않은 수준의 생맥주와 세계 맥주를 구비하고 있다.
"순대에 무슨 맥주냐고 처음엔 다들 반대했어요. 하지만 순대는 소시지와 닮았고 젊은 사람들은 소주보다 맥주를 선호하니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빈대떡엔 막걸리고, 삼합엔 소주, 치킨에 맥주인 것처럼 술과 안주에도 궁합이 있다. 물론 영양학적 궁합은 아니다. 우리 정서에 순대하면 소주라는 공식은 너무나 뿌리 깊다. 아무리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조건 맥주를 찾지는 않았을 터.
"그래서 3개월 동안 생맥주 한 잔씩 공짜로 줬죠. 처음에는 안 마시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한번 먹어보면 알아요. 순대와 맥주는 찰떡궁합이라는 걸 말이죠."
지금 순대와 맥주가 '순대실록'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지금은 순대실록이 줄 서는 집이 됐지만, 정말 죽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1990년대 학원사업을 하던 육경희 사장은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어린이 문화운동을 하고 있었다. 30대 후반 무렵 주머니에 돈이 좀 생기면서 시작한 것이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그때가 2003년 5월이었다. 장사에 대한 공부와 준비보다는 로망만 가지고 시작을 했으니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장사였다. 직접 한 것도 아니고 가맹사업이었다. 10여 년 전 대학로에서 보증금 5억에 월 임대료가 2500만원이었단다. 입이 벌어지다 못해 턱이 빠질 일이다.
아이스크림 팔아서 그걸 다 유지하려면 도대체 몇 개를 팔아야 하는 걸까? 그런 가게에서 하루 매출이 30여 만 원. 경제관념이 없던 터라 임대료가 비싼 건지 하루에 얼마를 팔아야 월세라도 낼 수 있는 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한 달 한 달 버티기도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개월 만에 가게에 불이 나서 그나마도 모두 잿더미가 됐다. 그의 인생에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식당은 불이 한 번 나면 대박이 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저도 들은 적 있는데, 그냥 속설이었나 봐요(웃음). 그 이후로도 고생 많이 했거든요."
육경희 사장은 갖은 걸 잃기만 한 게 아니라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처음 하는 장사에 수업료 지급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대가였다. 이 때문에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육경희 사장이 가장 먼저 조언하는 것은 '장사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것이다.
"성공확률보다 실패확률이 수십 배 더 높고 장사가 안 될 때 어떻게 할 것인 지에 대한 대안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실패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래야 수업료를 덜 내게 될 것이다.
"내가 파는 음식에 대해서는 박사가 돼야 합니다. 그만큼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죠."
음식을 모르면서 음식을 파는 것도 문제고 내가 파는 음식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른다면 장사할 자격도 없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불 난 가게의 건물주가 제안을 해 왔다. 그 가게에서 음식점을 하면 투자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큰 빌딩의 1층이 불이 나 흉물스럽게 되었으니 누구도 들어올 엄두를 못 내고 있었을 터. 갈수록 세는 떨어지고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없었으니 건물주로서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1년 후 오픈한 가게가 바로 '남도이야기'(2004년~2008년)라는 한정식 집이다. 한식도 제대로 모르고 남도 음식이란 건 더더욱 모르던 사람이 식당을 냈으니 됐을 리가 없다. 처음 1년은 파리만 날렸다. 역시나 엄청난 손해를 봤다. 연이은 실패, 그는 삶의 벼랑 끝에 섰다. 더 이상 추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육경희 사장은 배낭 하나를 메고 전국 방방곳곳 한식집을 순회했다. 유명한 맛집은 물론이고 맛있다는 풍문만 들려도 달려가서 음식을 먹어보고 연구했다.
그런 노력 끝에 '남도이야기'가 어느 정도 맛을 잡고 대학로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을 무렵 또 다른 장해물이 나타났다. 바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임대료. 결국에는 엄청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다시피 했다.
"대출받고 빚 얻어 시작한 장사라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죠.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갖은 돈을 다 까먹자 가족들에게 외면당했던 것입니다."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전셋집으로 더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했고 결국 월세로 밀리면서 '모든 게 네 탓'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더불어 어르신들은 음식 장사에 대한 편견이 심해 더더욱 힘들었다. 당시 빚 진 돈이 20억. 육경희 사장은 앞뒤로 절벽에 서 있는 막막한 기분이었다. 어느 때보다 가족의 응원이 필요했지만 응원은 고사하고 수많은 질책과 비난을 받으면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 가맹은 No!, 공부는 Yes!
'남도이야기'를 하던 육경희 사장은 모든 반찬의 맛을 매일 제대로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아 다 내 손을 거칠 수 없었고 완벽하게 나가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단일 메뉴 전문점이었다.
"한 가지 음식만 한다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노포들의 특징 역시 단일 메뉴잖아요."
생각한 김에 바로 실천에 옮겼다. 뜻이 맞는 동업자와 손잡고 대학로에 돼지고기 전문점을 낸 것. 처음 1년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수익을 내기 시작하자 '남도 이야기'는 과감하게 정리를 했다. 과도한 임대료 때문에 앞으로 남아도 뒤로는 밑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증금으로, 내친 김에 짬뽕전문점까지 진출을 했다. 역시 대학로에 2008년 문을 연 짬뽕전문점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됐다. 이후 육경희 사장은 국수전문점, 파스타 전문점 등 면 전문점으로 대학로를 주름잡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한정식 집을 하면서 빚더미에 앉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업에 또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맞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너무 무모하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제 무모한 도전에 겁을 먹고 떠난 직원도 있죠. 하지만 저는 확신하는 일에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아마 타고난 성품인 것 같아요."
대학로에 각기 다른 메뉴로 식당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육경희 사장은 그러나 가맹점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제가 가맹점의 최대 피해자잖아요(웃음). 아직 우리 가게는 동반성장이 어려운 구조고, 가맹점보다는 직영점으로 다양한 메뉴를 시도하는 것이 저와 맞는 것 같아요."
소시지와 순대는 사촌지간이라고 생각한 그는 순대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얼마 전 세계 소시지 기행을 다녀왔다. 외국에도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많았고 영국 블랙푸딩은 우리 순대와 모양새까지 닮은 것에 놀랐다.
여행 후 그는 순대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외국은 순대라는 음식이 사라져 가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지방마다 다양한 전통순대로 또 순대전문점으로 심지어 길거리 간식으로까지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소시지처럼 세계인이 우리 순대를 즐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세계인이 순대를 먹는다면 다음 선수로 곱창이 기다리고 있고 그들이 순댓국을 시도했다면 곰탕 설렁탕 역시 해볼 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