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발자 향한 '왕따' '낙인'…'권력'의 생존방식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인터뷰 20] 임인자 연출

예술계 검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전에는 논란이 생기면 검열이 잦아들곤 했는데, 현 정부에서는 더욱 당당하게 자행됩니다. 분노한 젊은 연극인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검열에 저항하는 연극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를 5개월간 진행하겠답니다. 21명의 젊은 연출가들이 총 20편의 연극을 각각 무대에 올립니다.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작품으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연극인들의 이야기를 CBS노컷뉴스가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검열이 연극계 판을 분열시키고 있다”
2. “비논리적인 그들의 검열 언어, 꼬집어줄 것”
3. “포르노 세상에서 검열이란”
4 “검열, 창작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5. “검열을 '해야 된다'는 그들…왜 그럴까”
6.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7. “'불신의 힘', 검열 사태 이후 나에게 하는 살풀이”
8. “갈수록 검열은 교묘해지고, 그들은 뻔뻔해지네”
9. “그들은 우리 기억에서 '세월호'를 지우려 했다”
10. “국가는 '이반 검열'에 어떻게 개입했을까”
11. ‘대학로 삐끼’를 통해 느끼는 검열 현실
12. '귀 밑 3cm 두발 자유'는 정말 '자유'였을까?
13. 만약 '검열'이 내게 닥친 일이었다면, 내 선택은?
14. “태어나면서부터 내재된 자기검열의 벽…균열 가해야”
15. '극장은 술집, 관객은 손님, 배경음악은 금지곡'
16. “미래 사람들은 말하겠지, '2015년에 검열이 있었대' 하고”
17. “검열 시대를 사는 바보같은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
18. “우리의 싸움은 '밥그릇' 때문이 아니다”
19. “미군정, 현재 검열의 원형이 주조되던 시기”
20. “내부 고발자 향한 '왕따' '낙인'…'권력'의 생존 방식”
(계속)

임인자 연출.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임인자(41) 연출이 무대에 올리는 '시민L, 낙인과 배제의 개인사'는 내부 고발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해 논란이 된 예술계 검열('블랙리스트', '팝업 시어터' 사태)은 내부 고발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히 알려져 있다. 법적 보호를 바라기 전에 이미 그들은 조직 내에서 생계와 안전의 위험에 노출된다.


상상해 보자.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 라고 외쳐야 하는 일을. 자신이 수년을 몸담아온 한 공동체가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피해를 겪게 될 것이다. 내부 고발로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던 동료들은 다시는 나를 안 볼지도 모른다. 나 하나만 입을 다문다면, 조용할 일인데.

'사회 정의'라는 거창한 명분을 갖다붙이지 않아도, 최소한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용기를 낸 결과는 참담하다.

조직 안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조직 밖으로 배제되는 '왕따'가 된다. 자신을 모함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그 말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

이 과정은 또 다른 잠재적 내부 고발자를 예방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의한 특권 세력이, 심지어 이 국가의 권력층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재생산 된 비결이다.

모두가 검열의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검열당한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을 때, 내부 고발자를 바라보고 있던 임 연출의 시각이 남다르고, 고마울 따름이다.

공연은 13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된다.

다음은 임인자 연출과의 1문 1답.

▶ 극단이 없던데, 그러면 극단이 아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 저는 2004년부터 11년간 변방연극제를 기획했다 변방연극제는 실험연극제로 시작해서 점차 미학적 최전방에서 사회적 관점으로의 변방의 의미를 찾아갔다. 사회에서 억압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대화하면서, 연극의 새로운 언어에 천착해왔다. 장소특정형 공연들을 통해 극장 밖으로 제도를 넘어 사회와 연극이 만나는 방식을 실험했다. 또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총무도 1년 정도 했다. 이밖에 광주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예술극장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등을 진행했다.

▶ 상당히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극단이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극단이 없는 이유는, 극단이 나에게는 한 사회로 다가와서이다. 집단으로서 사회 개념보다 삶의 공동체로서 극단이 내게는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이다. 근데 난 개인화된 사람이다 보니, 사회와 더불어 사는 방식을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연극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공동의 목표를 이뤄갈 자신이 없다고 할까. 극단을 통해 멀리 보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때문에 아직은 극단이 나에게는 무겁다. 지금으로서는 개인으로서 사회에서 나서고 있는 상태이다.

▶ 이번에 공연하는 ‘시민L, 낙인과 배제의 개인사’는 어떤 내용인가.
= 지난해 검열 문제는 내부 고발자의 용기 덕에 알려졌다. 나는 검열이라는 폭력을 당한 사람들도 걱정됐지만, 내부 고발자가 제일 걱정됐다. 폭력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폭력이 폭력으로 전환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만약 이 사건에 모두가 침묵한다면, (내부 고발자에게) 폭력 그 이상의 폭력이 이어졌을 거다. 이런 과정이 잘못됐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 ‘내부 고발자’에 초점을 맞춘다는 게 이전에 무대에 오른 공연들과는 색다르게 다가온다.
= 개인적으로 내부고발을 한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왕따가 되고, 낙인이 찍혔다. 또 그 과정에서 공포감을 느꼈다. 직장에서 배제되고, 누군가에게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 전달받고 낙인찍히고, 결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오롯이 서기에도 버거울 정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덧붙여 형제복지원 문제에 관련해 자원봉사 하면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당신은 연극인인가 사회 활동가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연극과 사회는 맞닿아 있는데 늘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 속에서 이 둘을 규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연극인이다. 또 한편, 낙인과 배제에 대한 공포감을 가진 개인이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연극으로 실천하는 데, 영역으로 나뉘는데 있어서의 갈등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활동 영역에서 집단 세력화가 있고, 이 안에서 배제의 낙인화가 있음을 보았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누군가는 시설 문제나 인권문제라 하지만, 내가 보기엔 누군가가 사람들을 부랑인이라 낙인찍고, 무언가 말할 수 없는 폭력을 가했던 일이다. 그들은 더 이상 시민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인간 청소이면서, 사회에서 거세되고 삭제된 사건, 한국 사회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거대한 두 서사에 억압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점이 검열과 맞닿았고 그것이 검열의 가장 폭력적인 모습이라 생각했다.

▶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에 참여한 계기가 있다면.
= 연극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거리도 나가고, 성명서도 쓰고, 국회도 찾아가는 일련의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일이 해결되지 않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때 돌파의 한 방식으로 검열에 저항하는 릴레이 연극 이야기를 들었고, 어떤 식으로든 연극이 발언의 기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를 결심했다.

임인자 연출.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 지난해 검열사건을 접했을 때 들었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분노를 넘어서는 감정이었다. 우리 사회는 과거부터 전쟁 이후의 학살, 독재 정권 시절의 억압,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겪었다. 대부분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신체에 가해지던 폭력을 넘어 우리들의 생각을 좌지우지 하려는 더 무서운 폭력이 다가왔고, 그것이 만연한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심지어 연극에서 조차 일상적으로 검열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분노를 넘어서는 감정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연극계에 오래 종사하다 보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직원들도 알고 있다. 연극을 소수 엘리트뿐 아니라 일상으로 확장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던 이들로 나는 그들을 기억하는데, 그들이 검열관으로 변신했다는 데에 굉장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논란을 예방해야 하고, 국론 분열은 안 된다”는 논리로, 국가 입장에서 예술과 검열을 통제.감시해야 한다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변해 놀랐다. 그들은 정치적이면 안 된다면서 오히려 정치적인 모습이 됐고, 국가가 예술을 사유화하려 한다.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이며, 심지어 범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 공연 이야기뿐만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 분화돼 있다는 점이다. 왜 이 일이 연극만의 문제로 분류돼 있는지 모르겠다. 연극의 문제로만 치환되는 게 안타깝다.

검열 문제는 저항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자유를 침해받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감각조차 갖는 게 어렵다. 세상에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을 감각화하는 게 연극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선은 무대로 오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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