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를 흔든 '2번타자' 필…김기태 승부수 통했다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 KIA타이거즈와 LG트윈스 경기가 열렸다. 6회초 1사 3루 KIA 나지완 외야플라이 아웃 때 언더베이스 시도해 득점에 성공한 필이 더그아웃에서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사진 제공=KIA 타이거즈)
"앞에 있어야 승부를 걸 수 있으니까"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은 10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LG 트윈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첫 경기에서 외국인타자 브렛 필을 2번 타순에 배치했다.

올해 타율 0.313, 출루율 0.357, 20홈런, 86타점을 기록한 필은 테이블세터보다는 중심타선에 더 어울리는 선수다. 김기태 감독으로서는 나름 파격적인 타순 배치를 했다.

김기태 감독은 "원정이고 (LG 선발인) 데이비드 허프를 상대로 잘 못쳤기 때문에 번트는 없다 생각하고 그렇게 정했다"고 말했다.

허프의 9월 복귀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잠실 개최를 만든 결정적인 변수였다. 허프는 9월에만 KIA전에 두차례 등판해 총 14⅓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2승을 수확했다. 덕분에 LG는 4위가 됐고 KIA는 5위로 불리한 위치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시작하게 됐다.


김기태 감독은 "경기 전반과 중반, 후반을 계산했을 때 (필이) 앞에 있어야 승부를 걸 수 있다"며 "6번에 서는 것보다 2번에 있어 타순이 빨리 돌아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번트가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김기태 감독은 "그때는 대타를 써야한다"며 웃었다. 필에게 부여된 임무는 이처럼 명확했다.

김기태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을 소집하지 않았다. 정규리그가 끝난 날 선수단을 불러모아 수고했다고 인사한 게 전부다.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더 진한 메시지를 전할 때도 있다. 2번타자 기용, 필에게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필을 2번에 기용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KIA 타자들은 올해 허프를 상대로 타율 0.180에 그쳤다. 50타수 9안타. 그런데 9안타 중 2개를 필이 때렸다. 팀내 유일한 허프 상대 멀티히트 기록자다.

왼손투수 허프는 '역스플릿' 경향을 보이는 대표적인 투수다. 좌완투수이지만 왼손타자보다 오히려 오른손타자에 더 강했다.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333, 반면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202에 불과했다.

3회까지 허프는 '언터쳐블(untouchable)'에 가까웠다. 오른손타자의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찌르는 날카로운 제구의 체인지업과 시속 150km의 강력한 직구의 조화에 KIA 타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필이 4회 선두타자로 나서 안타를 때렸다. 첫 4개의 공은 모두 직구였다. 필은 침착하게 맞서 볼카운트 2-2를 만들었다. 이어 바깥쪽 체인지업을 밀어쳐 우전안타를 때렸다.

선제 득점이자 결승 득점의 발판이었다. 계속된 2사 2,3루에서 안치홍의 평범한 땅볼을 LG 유격수 오지환이 놓치면서 주자 2명이 홈을 밟았다.

필은 6회초에도 안타를 때렸다. 선두타자로 나서 이번에는 허프의 직구를 공략해 우측 방면 2루타를 터트렸다. 김주찬의 내야땅볼 때 3루에 안착한 필은 나지완이 중견수 플라이를 때리자 홈으로 쇄도해 득점에 성공했다.

현대 야구에서는 '강한 2번타자'가 대세다. 출루율이 좋은 타자들을 1,2번에 배치하고 중심타선에 밥상을 차려주게 하는 방식도 있지만 요즘에는 팀내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타자를 2번에 베치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팀들이 늘고 있다.

리드오프가 1회를 제외한 나머지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선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타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앞에 있어야 한번이라도 더 타석에 선다. 경기 막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또 2번 타순은 하위 타순이 어렵게 만든 찬스를 해결하거나 중심타선과의 확실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그랬듯이 필은 허프를 상대로 멀티히트를 기록한 유일한 KIA 타자였다. 김기태 감독의 승부수는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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