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대구 희망원' 진실 캐는 어느 장애인의 염원

정중규 국민의당 희망원진상조사위 공동위원장 "직접 본 참상, 예상 그대로"

(사진=SBS 제공)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인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최근 2년 8개월 동안 수용인원의 10%에 달하는 12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참혹한 실상이 드러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힘써 온 인권운동가 정중규(58) 박사(재활과학)는 9일 CBS노컷뉴스에 "제가 장애인 당자사로서 처음 희망원 내부 상황을 봤을 때 든 생각은 '예상 그대로구나'였다"며 "누구를 질타하고 처벌하는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당 간사인 김광수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아 지난달 19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현장을 직접 방문 조사했다.

"2차 조사 때는 희망원 측에서 약속을 어기고 언론 취재를 금지해 마찰을 빚기도 했죠. 제가 장애인 당사자로서 국내 사회복지시설의 실상을 접해 왔는데, (희망원 역시) 예상한 그대로였습니다. 그곳의 건물 등 시설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그 안에서 운영하는 부분들에 큰 문제가 있는 거죠."

정 위원장은 희망원과 같은 시설을 '거주시설'이라고 부르는 데 반대했다. "그 표현에 굉장한 어폐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저는 거주시설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거주를 합니까. 사람은 가정과 사회 안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시설들은 '거주'가 아닌 '수용' 시설입니다. 아름다운 말로 교묘하게 본질을 가리고 있는 거죠."

희망원의 참상을 접한 시민들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천주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데 더욱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정부로부터 대구 천주교구가 희망원의 운영권을 넘겨받은 때는 1980년으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 직전 만든 친위대 격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대구대교구 신부 2명이 참여했던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도 알려졌다. 그 뒤로 "대구대교구가 독재권력의 비호 아래 대형 복지시설을 운영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정 위원장은 "수용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복지시설의 규모화는 필연적으로 엉뚱한 길로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진단했다.

"천주교는 한국에서 지난 1세기 동안 복지, 특히 장애인 복지 면에서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국민들의 복지 요구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정부가 감당을 못하게 되다보니 이를 민간에 넘기는 일이 잦아집니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혼합식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대구대교구가 전두환 정권과 결탁했다는 비판이 나와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당시 이미지가 좋던 천주교에 자연스레 위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그렇게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규모화 하면서, 그때부터 천주교 복지가 엉뚱한 길로 빠졌다고 봅니다."

◇ "악순환 끊는 해법은 시설 수용 아닌 사회 포용"


국민의당 희망원진상조사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권운동가 정중규 박사(사진=정 위원장 제공)
결국 "사람을 수백 명, 수천 명 넘게 수용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인간적인 대우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 정 위원장의 지적이다. 이는 그가 겪은 삶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1980, 90년대 부산에 살 때 사회복지시설인 '오순절평화의마을'의 초창기 홍보를 맡고 있었어요. 이곳도 처음에는 굉장히 순수하고 헌신적으로 운영됐죠. 그런데 당대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집니다. 엄청나게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부산시는 평화의마을에 예산과 부지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형제복지원생들을 받아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갑자기 규모가 커지자 평화의마을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10년을 함께했던 저는 그 과정을 지켜봤어요. 하루는 수용시설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참담한 모습을 본 뒤로는 평화의마을과 관계를 끊었죠."

정 위원장은 "그때부터 최근 희망원까지 사회복지시설들에서 똑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봐 왔다"고 했다. 그가 희망원 사태를 두고 "몇몇 직원의 폭력 등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 이상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코 희망원만의 문제도, 천주교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수용시설의 규모화 중심으로 가는 한국의 사회복지 흐름을 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는 14일에는 희망원의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다. 정 위원장은 "앞서 간담회를 하고 증언을 들었지만, 희망원 사무국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무조건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직원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됐기에 서류가 미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증거가 없다'고들 말해요. 관련 서류를 없애는 작업까지 벌인 걸로 드러났는데 참 씁쓸합니다. 저희는 2010년부터의 사망자 명단을 확보해 (사망자가) 300여 명이란 걸 확인했어요. 2000년부터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없다'는 겁니다. (자료를 찾아서) 수기로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봐야죠."

그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해법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12일 '병자와 장애우들을 위한 자비의 특별회년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월한) 신체를 가진 것이 대중의 신화가 되고 거대 사업이 돼 버린 시대에서, 불완전한(장애) 것은 감춰야만 하는 일이 됐다. 그것이 지배계층의 행복과 평온이라는 (사회)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계층은) 이런 (불완전한 신체의) 사람들을 격리해서 돌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질병과 장애에 대해 눈을 감는 것과 같은 착각이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탈시설화에 있다"는 것이 정 위원장의 지론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시설에 수용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원의 경우 전체 인원이 1150명인데, 이 가운데 국가 등록 장애인은 120명입니다. 이들은 분리된 시설에 수용돼 있는데, 이번 기회에 이분들만이라도 우선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대구시가 앞장서고 국가가 도와야 해요.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면서 함께 살겠다는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엄청난 국가 예산 중 복지 예산 비중을 높일 수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잖아요. 이번에 정부가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예산을 동결·삭감해 장애인들이 투쟁을 벌이는 등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희망원 사태가 정부는 물론 시민들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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