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헥터 휴 먼로(Hector Hugh Munro)보다 필명인 사키로 더 알려진 그는 1870년 영국령 버마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이태 만에 어머니가 사망하여, 영국의 할머니와 두 고모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매우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다 미혼에 독신으로 서로 사이가 나쁘고, 아동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두 고모 손에 자라면서 억압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은 사키에게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1893년 성인이 된 사키는 아버지의 주선으로 버마 헌병대에 취직했으나 병약한 체질로 자주 말라리아에 걸려 결국 영국으로 돌아온다. 건강을 회복하고, 19세기 후반 신문 저널리즘의 발달에 따라 런던 언론계로 나온 그는 《웨스트민스터 가제트》지에 정치 풍자 칼럼을 기고한다. 이 글들을 묶어 책으로 출간하면서 ‘사키’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키’는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집 『루바이야트』에 나오는 술을 따르는 미소년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엄숙했던 빅토리아 시대를 지나 자유롭고 예술적인 에드워드 시대가 시작되고, 1902년 《모닝 포스트》지의 해외 특파원이 된 사키는 발칸 반도, 러시아, 폴란드, 파리 등지를 다니며 기사를 보내는 한편, 마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태평하고 제멋대로인 청년 레지널드의 기행을 담은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이 단편들을 모아 『레지널드』(1904)로 출간하고, 1910년에 『레지널드』의 후속 단편집인 『러시아의 레지널드』를, 1911년에는 레지널드보다 더 장난이 심하고, 자유분방한 인물 클로비스가 나오는 단편『클로비스의 연대기』를 출간한다. 레지널드나 클로비스는 인습적이고 허세를 부리는 어른들의 불편이나 몰락에서 짓궂은 기쁨을 얻는 도시 출신의 젊은이들로, 이들의 꾀부림과 비꼼을 통해 사키는 1910년대 영국 사회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발가벗긴다.
1914년에는, 버나드 쇼의 희곡 제목『인간과 초인간』을 패러디해 『짐승과 초짐승』을 출간하여 풍자문학의 한 극점을 이루었다. 동물을 싫어했던 엄한 고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동물을 좋아하게 된 사키는 이 단편집에서 동물들의 눈에 비친 모순되고 위선적인 인간의 모습을 잔혹할 정도로 낱낱이 묘사했다. 1916년 11월 14일,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전선 한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사후에 출간된 단편집 『평화 장난감』(1919)과 『네모난 달걀』(1924)에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방탕하고 게으른 사교계를 심술궂은 눈으로 바라보던 방관자에서 갑자기 변신하여 전쟁에 자원입대하고 위험에 몸을 바친 그의 인생이 아이러니했듯이, 사키는 단편소설에서 인생의 얄궂은 면을 즐겨 묘사했다. 그리고 말하는 고양이나 늑대인간, 마법에 걸린 마을 등의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환상 기법으로 어리석은 어른들을 골탕 먹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극복하지 못한 상처를 보듬고, 보상했다.
동화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단편소설의 대가였던 오스카 와일드나 러디어드 키플링 등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던 사키는 로알드 달과 『곰돌이 푸우 이야기』로 유명한 A. A. 밀른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다소 덜 알려진 경향이 있는데,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3> 『사키』에는 그의 단편소설 총 142편 중에서 그 절반에 해당하는 71편이 꼼꼼히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어리석은 인간, 특히 어른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위트, 쓸쓸한 블랙 유머가 빛나는 그의 단편을 빠짐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우리 어머니는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어.”
“또?”
“처음이야.”
“너는 아들이니까 당연히 알고 있겠지. 나는 네 어머니가 적어도 한두 번은 결혼하신 줄 알았어.”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세 번 결혼하셨지. 내 말은 우리 어머니가 결혼에 대해 생각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이야. 다른 때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결혼했었지. 사실은 이번에도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건 어머니가 아니라 나야.”
“나는 어머니가 침울해지고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건 어머니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내가 알아차린 첫 번째 징후는 우리가 수입보다 많은 생활비를 쓰고 있다고 어머니가 불평하기 시작했을 때였지. 요즘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수입보다 많은 생활비를 쓰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있어. 유능한 몇몇 개인은 용케도 양쪽 다 해내고 있지.”
_ 75쪽, 「중매쟁이」에서
사키 지음 | 김석희 옮김 | 현대문학 | 608쪽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