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중독, 부모도 자녀도 아이일 뿐

신간 '중독은 없다: 섣부른 편견으로 외면해온 디지털 아이들의 일상과 문화'

아이들의 디지털 사용을 막연한 불안과 중독이라는 낙인으로 대하기에 앞서 부모 자신의 디지털 사용을 되짚어보고 아이의 입장을 이해해보자. 가족 구성원으로서 부모와 아이의 대화적 관계가 유지될 때 ‘부모-하기’는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 부모가 휴대전화를 스마트하게 사용한다면 아이도 이를 보고 배울 가능성은 높아진다. ―본문 217쪽

내 아이를 망치고 중독자로 만드는 주범인 스마트폰은 알아서 쓰도록 내버려둘 수도, 그렇다고 무작정 뺏어버릴 수도 없는 골칫덩이가 되어버렸다.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만족스러운 해법을 제시하고 못하고 있다.

신간 '중독은 없다 :섣부른 편견으로 외면해온 디지털 아이들의 일상과 문화'는 그러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지금의 문제적 상황을 ‘디지털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로 작정하고 썼다. 아이들의 디지털 사용을 중독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마뜩잖을 뿐 아니라, 중독이란 시각으로 접근하는 한 아이들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디지털과 연루된 문제 상황을 개선해나갈 방법을 찾기란 요원하다고 생각해서다.

중독의 관점에서 청소년의 디지털 사용을 바라볼 때 가장 큰 문제는 모두가 대화불능인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치유와 관리대상인 환자와는 실질적인 대화를 진행하기 어렵다. 병리 상태의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증상에 대한 즉각적인 약물적·행동적·상황적 처치이지 대화를 통해 의논하거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병적 문제를 지닌 중독자로 보는 시각에는 대상-환자에 대한 치료 책임자라는 감시적인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중략) 인터넷 중독이라는 디지털 시대극에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청소년의 일상적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남용이라는 단일원인에서 빚어진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보다 복합적이고 구조화된 요인들과 관련되어 있다. ―본문 42∼43쪽

책은 애꿎은 아이들을 볼모로 과잉 생산되고 있는 중독 이야기의 실체를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한다. 특히 디지털을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요즘 아이들의 일상 문화를 통해 디지털 사용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중독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사용’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현상을 해독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아이들은 물론 모바일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소통하고 협력할 것인지를 주제로 이야기는 확장된다.

디지털 세상에선 부모도 자녀도 아이일 뿐

이 책은 구체적인 방법과 지침을 알려주는 실용서라기보다는 디지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아이들과 보통 사람들이 디지털을 통해 무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생각 지도에 가깝다. 여기에는 미디어 문화사회학자이자 청소년 연구자로서의 분석적 시선이 기본으로 전제돼 있으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미디어의 일상적 활용을 놓고 좌충우돌하며 고민했던 경험 역시 고스란히 녹아 있다.

스마트폰이 아이를 악당으로 만든다지만, 아이를 악당으로 여기는 부모의 시선이 아이를 진짜 악당으로 만든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면, 아이를 주시하고 나무라는 대신 아이의 가장 가까운 타자인 부모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나의 일상사 스트레스가 가장 약한 타자인 아이를 향해 있지는 않은지, ‘아니라고 하지만 아닌 게 아닌’ 내 욕망이 아이의 관심이나 꿈보다 더 우선이진 않은지, 내 경험과 가치가 아이의 삶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본문 189∼190쪽

모바일 세계라는 속도 지향적이고 유동적인 현실은 각자의 판단을 더디고 어렵게 하지만 그렇다 해서 피해가거나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저자는 아이들의 디지털 사용과 관련해 어떻게든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구조의 희생양이나 수동적인 적응자가 아닌 행위자로서 ‘하기’의 관점으로 디지털 사용 상황을 설명한다. 즉, 디지털 시대를 살며 부모-자녀간의 신뢰와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부모 역할에 맞춰가는 ‘부모-되기’가 아니라 자녀 및 가족구성원 특성, 가족 문화, 가족 환경 등의 맥락에 따른 능동적인 ‘부모-하기’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디지털 세계에서 서로를 위한 디지털 사용 방식을 만들고 재설계를 거듭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경험이다. 이러한 시도를 끊임없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앞장서 아이들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 대신 디지털 아이들과 부모 사이의 상호인정과 협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중략) 아이의 디지털 세상을 부모가 경험했던 세상의 기준으로 재단하여 말하는 대신, 디지털 아이들의 말을 향해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본문 212쪽

1장은 중독의 시선으로 디지털 사용을 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살펴본다. 2장은 문화사회학의 시선을 통해 디지털 세계의 풍경을 전반적으로 조망해보고 3장에서는 디지털 아이들을 규정하는 편견을 넘어, 이 아이들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적절히 이해할 것인지를 다룬다. 4장은 디지털 아이들의 일상을 디지털 산책자, 모바일 대화, 놀이 언어, 협력적 자기표현 등의 주제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5장에서는 즐겁지만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 역시 공존하는 디지털 아이들의 현실을 살펴보고 6장은 디지털 아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앞선 세대로서 우리 어른들에게 필요한 변화는 무엇일지, 질문을 제기한다. 7장은 디지털 사용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새로운 디지털 습속은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방법론과 사회적 소통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윤명희 지음 | 율리시즈 | 232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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