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평범한 사람들의 기이한 심리 상담집

여기 한 소녀가 있다. 겨우 열두 살밖에 안 된 그 소녀는 다섯 살 난 동생이 죽은 이후 틈만 나면 자살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소녀가 줄만 보면 목을 매달려고 하자 의사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줄넘기조차 금지하게 된다.
또 한 소녀가 있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 변호사인 오빠와 정치학 박사인 언니,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전업주부 엄마.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가정에 전도유망한 그 소녀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살가죽조차 역겨워하며 음식을 거부한다. 또 어떤 노인도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이 노인은 자신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아마 종국에는 자기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부인에게 버림받고 자식들을 볼 수 없게 된 중년 남자,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유명 인사, 자신의 생모, 친딸이 누군지 알게 되었지만 서로 만나기를 거부하는 모녀도 있다. 얼핏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정상으로 보이지만 기이하고 충격적인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 사람들.

이들의 인생 스토리와 함께 심리 분석이 등장하는 상담 사례집,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가 출간되었다.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아동 심리학자로 25년간의 임상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 타냐 바이런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청소년 심리 상담 고문으로 활동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이다. 그녀가 임상 심리학자 실습생 시절에 겪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 사례집은 영국 〈타임스〉에 연재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 책의 원제는 ‘해골 찬장(the skeleton cupboard)’으로 이 표현은 ‘집안의 치부 혹은 비밀’을 뜻하는 은어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정상적인 가족 신화에 물음표를 던진다. 예컨대 우리가 말하는 정상성, 이를테면 인자한 아버지와 너그러운 어머니, 품성 고운 자식으로 이루어진 ‘정상 가정’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가 봐도 콩가루 집안이라 할 만한 집뿐 아니라 누구나 선망하는 화목한(어쩌면 그냥 화목해 보일 뿐인) 가정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성원 간의 연민과 원망,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로 뒤범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리얼리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모든 가정, 모든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즉 치부나 비밀)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또한 ‘상담자와 환자’, ‘병의 진단과 치료’라는 경계도 마찬가지이다. 임상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마치 신처럼 그려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저자는 자기 자신의 흔들리는 내면 심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 환자와 의사 사이에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상 행동을 하는 환자의 심리를 분석해서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이런 관점은 잘 드러난다. 치료의 핵심은 그 환자의 심리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 안에 문제의 해결책이 들어 있기 때문에 열쇠는 환자가 이미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코 권위 있는 의사의 자의적 판단이나 전문적 지식이 해결의 실마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열다섯 살 때 임신한 마약중독자에 의해 머리를 난타당해 죽어가는 할머니를 목격한 자신의 경험담이 등장하는 머리말에서부터 팽팽한 몰입도와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이 책은 임상 기록 일지임에도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 특징 때문에 자연스레 임상의학을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올리버 색스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된다. 색스의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보다는 훨씬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따름이다. 몇몇 이야기들은 마치 추리소설을 보는 듯, 다음 페이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되고, 예상치 못한 반전에 놀라게 된다. 또한 가족애, 모성애, 이성애 등 인간 사회에서 통용되는 당연한 미덕이나 관습이 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책 속으로

인간인 우리는 대개 중요한 일에 진땀을 빼지만 가장 큰 의미를 지니며 가장 큰 절망을 초래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사건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해럴드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할머니한테 책임지고 감을 사다줄 수 없게 된 것이 바로 그랬다.
225쪽

내 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들한테는 곧잘 실망하는 법이다.
233쪽

“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도와주고 싶다고요.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주고 거기서 해방시켜서 질 높은 삶, 살맛 나는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다고요.”
“흠, 그럼 이번 현장에 오길 정말 잘한 셈이네요. 이젠 그게 늘 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알았을 테니까.”
260쪽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퍼뜩 드는 생각은 스포트라이트가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만 집중되고 그 치료를 맡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절대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접근법은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과 ‘미치지 않은’ 사람들만 있다는 아주 위험하고도 보편적인 믿음을 조장하는 듯하다.
427쪽

요즘에는 재미 삼아 정신병원으로 구경을 가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 우리는 마음껏 소리 지르고 ‘정신 차리라’고 막말을 할 수 있는 매정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건, 타인의 몰락을 보고 싶어 하는 끝없는 욕망을 통해서건 여전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관음적 즐거움을 누린다. 게다가 그러한 몰락이 ‘모든 걸 가진’ 자들에게 일어나면 우리는 더없이 즐거워한다.
434쪽

타냐 바이런 지음 |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 | 448쪽 | 1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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